한국사 심화 · 2026제77회

조선후기임술 농민 봉기

28.다음 자료에 나타난 상황 이후의 사실로 옳은 것은?

28번 문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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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19세기, 세도 정치와 농민의 저항

19세기에는 왕의 외척 등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 정치가 이어지면서, 지방관과 아전들의 수탈이 심해졌다. 삼정(토지에 매기는 전정, 군포를 걷는 군정,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이자를 붙여 걷는 환곡)의 문란은 특히 백성을 힘들게 했고, 이는 곳곳의 농민 봉기로 이어졌다.

  1. 1811홍경래의 난 — 평안도 지역 차별과 세도 정치에 반발, 정주성을 한때 점령
  2. 1862.2진주에서 백낙신의 수탈에 반발해 농민 봉기 시작(유계춘 주도)
  3. 1862봉기가 전국으로 번짐(임술 농민 봉기),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어 진주의 상황을 조사
  4. 1862정부가 삼정의 폐단을 시정하려고 삼정이정청을 설치

삼정이정청은 임술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번진 뒤, 삼정의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세운 기구다.

해설 보기

2026한국사 심화 28번 해설

정답: 3

  1. 홍경래 등이 봉기하여 정주성을 점령하였다.

    정답: X

    홍경래 등이 봉기해 정주성을 점령한 것은 1811년, 홍경래의 난이다. 임술 농민 봉기(1862)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다.

  2. 신돈이 중심이 되어 전민변정 사업을 운영하였다.

    정답: X

    신돈이 중심이 되어 전민변정 사업을 벌인 것은 고려 공민왕 때다(1366). 임술 농민 봉기보다 500년 가까이 앞선 시기의 일이다.

  3. 삼정의 문란을 시정하고자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다.

    정답: O

    삼정(전정·군정·환곡)의 문란을 시정하려고 삼정이정청이 설치된 것은 1862년, 임술 농민 봉기가 전국으로 번진 직후의 일이다. 정부는 이 기구를 통해 삼정의 폐단을 바로잡으려 했다.

  4. 기금의 이자로 빈민을 구휼하는 제위보가 만들어졌다.

    정답: X

    기금의 이자로 빈민을 돕는 제위보가 만들어진 것은 고려 광종 때다(963). 임술 농민 봉기보다 900년 가까이 앞선 시기의 일이다.

  5. 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였다.

    정답: X

    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직후다. 임술 농민 봉기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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