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심화 · 2026제77회

고려신진 사대부와 고려의 멸망

18.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18번 문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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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위화도 회군에서 고려 멸망까지

명이 철령 이북 땅을 자기 것으로 삼겠다고 통보하자(1388년 2월), 우왕과 최영은 요동 정벌을 결정했다. 하지만 정벌군을 이끌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되돌려 개경으로 향했고, 이 일을 계기로 권력을 잡아 결국 새 왕조를 열었다.

  1. 1388.2명이 철령위 설치를 통보 → 우왕·최영이 요동 정벌을 결정
  2. 1388.5이성계가 4불가론을 내세워 반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음 →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림(위화도 회군)
  3. 1388개경으로 돌아온 이성계가 최영을 유배 보내고 우왕을 폐위
  4. 1391신진 사대부의 주도로 과전법을 실시해 토지 제도를 개혁
  5. 1392정몽주가 살해되고, 공양왕이 폐위되며 이성계가 조선을 세움

이성계가 요동으로 가던 군대를 위화도에서 되돌린 것이 위화도 회군이며, 이는 1388년의 일이다.

해설 보기

2026한국사 심화 18번 해설

정답: 5

  1. (가)

    정답: X

    (가) — 연표에서 가장 이른 시기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요청한 1388년보다 앞선 때다.

  2. (나)

    정답: X

    (나) — (가)보다는 뒤, (마)보다는 앞선 시기다. 아직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기 전이다.

  3. (다)

    정답: X

    (다) — (나)보다는 뒤, (마)보다는 앞선 시기다. 아직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기 전이다.

  4. (라)

    정답: X

    (라) — (다)보다는 뒤, (마)보다는 앞선 시기다. 아직 위화도 회군이 일어나기 전이다.

  5. (마)

    정답: O

    (마) — 좌·우군도통사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요청했지만 최영이 이를 거부한 자료 속 상황은 실제로 1388년 5월, 요동 정벌군이 위화도까지 나아갔다가 되돌아서기 직전의 일이다. 연표에서 가장 늦은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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