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심화 · 2026제78회

일제농민·노동 운동

37.다음 판결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7번 문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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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암태 소작 쟁의, 소작농이 뭉쳐 소작료를 낮추다

1920년대 전라남도 무안군 암태도에서는 소작농들이 지주에게 소작료를 낮춰 달라고 요구하며 오랫동안 싸웠다. 이 쟁의는 1920년대 농민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 1923.9서태석 등이 암태 소작인회를 조직, 소작료 인하를 요구
  2. 1923~1924지주 문재철 측과 갈등, 소작료 불납 동맹과 시위, 지주 측 인물의 송덕비를 넘어뜨림
  3. 1924.8소작료를 낮추기로 합의하며 쟁의 마무리
  4. 1927각지의 소작 쟁의 경험이 쌓이며 전국 단위의 조선 농민 총동맹 결성

암태 소작 쟁의(1923~1924)는 소작농이 뭉쳐 소작료 인하를 이끌어 낸 대표적인 사례로, 이후 전국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 결성(1927)으로 이어졌다.

해설 보기

2026한국사 심화 37번 해설

정답: 3

  1. 지계아문이 설치되어 지계가 발급되었다.

    정답: X

    지계아문이 설치되어 지계가 발급된 것은 1901년,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 때다. 암태 소작 쟁의 판결(1924)보다 앞선 시기다.

  2.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하는 회사령이 제정되었다.

    정답: X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하는 회사령이 제정된 것은 1910년이다. 암태 소작 쟁의 판결보다 앞선 시기다.

  3. 전국 단위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었다.

    정답: O

    전국 단위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된 것은 1927년이다. 암태 소작 쟁의(1923~1924) 등 각지의 소작 쟁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를 이끌 전국 조직이 만들어졌다.

  4. 일본의 토지 침탈에 맞서 농광 회사가 설립되었다.

    정답: X

    일본의 토지 침탈에 맞서 농광 회사가 설립된 것은 1904년이다. 암태 소작 쟁의 판결보다 앞선 시기다.

  5. 경복궁에서 최초로 조선 물산 공진회가 개최되었다.

    정답: X

    경복궁에서 조선 물산 공진회가 처음 열린 것은 1915년이다. 암태 소작 쟁의 판결보다 앞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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