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은 범죄를 「국가에 대한 법익 침해」가 아니라 「사람과 관계에 가해진 해악」으로 규정하고, 그 해악을 입은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피해 회복과 관계 복구의 방법을 함께 정하는 사법 패러다임이다. 전통적 응보 사법이 「어떤 법을 어겼는가, 누가 했는가, 어떤 벌을 줄 것인가」를 묻는 데 비해, 회복적 사법은 「누가 피해를 입었는가, 그 필요는 무엇인가, 그 필요를 채울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가」를 묻는다. 하워드 제어(Howard Zehr)가 이 세 질문의 전환으로 패러다임을 정식화했다. 실무 형태는 크게 세 갈래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조정자를 사이에 두고 만나는 피해자-가해자 조정(VOM), 양측 가족과 지지자까지 참여하는 가족집단회합(FGC), 지역사회 구성원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합의를 도출하는 양형서클(sentencing circle)이 있다. 우리 법에서 이 이념이 제도로 구현된 대표적 자리가 범죄피해자 보호법 제41조 이하의 형사조정이다.
02이해하기
응보 사법은 국가와 가해자의 2자 구도다 — 피해자는 증인 자리에 앉을 뿐 당사자가 아니다. 회복적 사법은 이 구도를 피해자ㆍ가해자ㆍ공동체의 3자로 되돌린다. 그래서 「가해자에게 관대한 제도」라고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부담을 지운다. 형벌은 수동적으로 견디면 끝나지만, 회복은 피해자를 마주 보고 자신이 무엇을 망가뜨렸는지 듣고 그것을 갚아야 끝난다. 회복적 사법의 핵심어가 「용서」가 아니라 「책임」인 이유가 여기 있다.
03핵심 포인트
제어(Zehr)의 세 질문 — 누가 피해를 입었는가, 그의 필요는 무엇인가, 그 필요를 충족할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핵심 가치 — 당사자의 자발적 참여, 대화를 통한 합의, 피해의 실질적 회복, 공동체의 관여
주요 실천 모델 — 피해자-가해자 조정(VOM), 가족집단회합(FGC), 양형서클
가해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형벌의 수인이 아니라 책임의 인수 — 해악의 인정과 배상 이행
우리 법의 구현 — 범죄피해자 보호법의 형사조정(제41조~제46조), 소년법의 화해권고
한계 지적 — 자발성이 형식화될 위험, 권력 불균형 상태의 대면, 중대범죄 적용의 논란, 피해자의 2차 피해 우려
04한눈에 보기
응보적 사법
범죄는 국가에 대한 침해. 물음은 「어떤 법을 어겼나ㆍ누가ㆍ어떤 벌을」. 절차는 국가 대 가해자, 결과는 형벌.
VS
회복적 사법
범죄는 사람과 관계에 대한 해악. 물음은 「누가 피해를 입었나ㆍ필요는ㆍ의무는 누구에게」. 절차는 당사자 참여, 결과는 배상ㆍ사과ㆍ관계 복구.
더 알아보기
형사조정의 회부 요건과 회부 금지 사유(제41조)
검사는 피의자와 범죄피해자 사이에 형사분쟁을 공정하고 원만하게 해결하여 범죄피해자가 입은 피해를 실질적으로 회복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수사 중인 형사사건을 형사조정에 회부할 수 있다(제1항). 회부할 수 있는 사건의 구체적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되, 세 경우에는 회부하여서는 아니 된다(제2항 단서) — ① 피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경우, ② 공소시효의 완성이 임박한 경우, ③ 불기소처분의 사유에 해당함이 명백한 경우. 다만 ③에서 기소유예처분의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는 제외되므로, 기소유예가 예상되는 사건은 오히려 형사조정에 적합한 사건으로 남는다. 회부는 「수사 중」에 이루어지므로 형사조정은 재판 단계가 아니라 수사 단계의 제도다.
조정 결과를 검사가 어떻게 쓰는가 — 제45조 제4항의 비대칭
형사조정위원회는 조정기일마다 과정을 서면으로 작성하고, 조정이 성립되면 그 결과를 서면으로 작성한다(제45조 제1항). 조정 과정에서 증거위조나 거짓 진술 등의 사유로 명백히 혐의가 없다고 인정되면 조정을 중단하고 담당 검사에게 회송하여야 한다(제2항). 절차가 끝나면 서면을 붙여 회부한 검사에게 보낸다(제3항). 여기서 중요한 것이 제4항이다 — 검사는 사건을 수사ㆍ처리할 때 형사조정 결과를 고려할 수 있으나, 「형사조정이 성립되지 아니하였다는 사정을 피의자에게 불리하게 고려하여서는 아니 된다」. 성립은 유리하게 쓸 수 있지만 불성립은 불리하게 쓸 수 없는 비대칭 구조다. 이 비대칭이 없으면 피의자는 불이익을 피하려고 조정에 응하게 되어 「자발적 참여」라는 회복적 사법의 전제가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