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안에서 자리를 겪는다→나름의 결론을 내린다→가상적 목표를 그린다→생활양식으로 굳는다
가족 안의 자리와 흔한 경험| 자리 | 자주 겪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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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 | 한동안 독차지하다 자리를 내주는 경험, 책임을 먼저 지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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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중간 | 늘 앞선 사람을 보며 자란다, 다른 자리를 찾으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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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 | 돌봄을 많이 받고 응석받이가 되기 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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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동 | 어른들 속에서 자라 어른스럽거나 나누는 데 서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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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심이 실천의 목표가 되는 자리
아들러가 정신 건강의 잣대로 사회적 관심을 든 것은 사회복지의 관점과 잘 맞는다. 개인의 증상이 줄어드는 것만으로 회복을 말하지 않고, 그 사람이 다시 어딘가에 속해 무언가를 주고받게 되었는가를 함께 보기 때문이다. 고립된 노인에게 필요한 것이 상담만이 아니라 나눌 자리라는 판단, 정신장애 당사자의 회복에서 일과 관계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흐름이 모두 이 관점과 닿아 있다. 실천에서 이 관점을 쓰려면 개입 계획에 받는 자리뿐 아니라 주는 자리를 함께 넣게 된다. 서비스 이용자가 다른 이용자를 돕는 역할을 맡거나, 자기 경험으로 남을 지원하는 자리에 서면 사회적 관심이 자라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도 회복된다. 도움을 받기만 하는 자리는 오래 머물수록 무력감을 키우므로, 기여할 자리를 만드는 일이 곧 개입이 된다.
출생순위를 조심스럽게 쓰는 법
출생순위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만큼 오해도 많다. 첫째는 책임감이 강하고 막내는 응석받이라는 식의 도식으로 굳어져, 사람을 미리 규정하는 데 쓰이기 쉽다. 아들러가 말한 것은 그런 법칙이 아니었다. 그가 본 것은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각자가 다른 자리를 겪는다는 사실이었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결론으로 삼았는지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이었다. 터울이 크면 둘 다 첫째처럼 자라고, 형제 가운데 아픈 아이가 있으면 순서와 무관하게 자리가 달라지며, 가족의 형편과 문화도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실천에서 출생순위는 결론이 아니라 물음의 실마리로 쓰는 것이 옳다. 「가족 안에서 어떤 자리였다고 느끼셨나요」라는 물음이 「몇째인가요」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