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은 프로이트에서 출발했으나 네 가지를 크게 바꾸었다.
첫째, 발달의 동력을 성적 에너지가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에서 찾았다. 그래서 심리성적이 아니라 심리사회적 발달이라 부른다. 각 단계의 과제는 몸의 부위가 아니라 그 시기에 만나는 사람들과 사회의 요구에서 나온다.
둘째, 발달을 어린 시절로 끝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프로이트가 다섯 단계로 사춘기까지를 다룬 데 견주어 에릭슨은 여덟 단계로 노년까지 다루며, 이것이 전 생애 발달 관점의 출발이 되었다.
셋째, 자아를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시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고 성장하는 힘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의 계열을 자아심리학이라 부른다.
넷째, 각 단계를 위기로 그렸다. 위기는 재앙이 아니라 성장의 전환점이며, 서로 반대되는 두 힘이 맞서는 자리다. 한쪽이 우세하게 해결되면 그 단계의 덕목(강점)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만 남는 것이 아니라 긍정 쪽이 조금 더 우세한 균형이라는 점이다. 불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오히려 위태롭다.
점성원리는 이 여덟 단계가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펼쳐진다는 원리다. 각 단계에는 그 과제가 전면에 나서는 고유한 때가 있고, 앞 단계의 결과가 뒤 단계의 바탕이 된다. 다만 앞에서 잘 풀리지 않았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어서, 뒤의 경험으로 다시 다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네 가지 변화가 사회복지실천에 남긴 것은 분명하다. 발달을 사회와의 관계로 보았기에 환경을 바꾸는 일이 곧 발달을 돕는 일이 되었고, 전 생애로 넓혔기에 노인과 중년도 성장의 대상이 되었으며, 자아를 힘으로 보았기에 강점을 찾는 관점이 자리를 얻었다. 오늘날 사회복지가 에릭슨을 특히 가까이 두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02이해하기
프로이트가 사람 안에서 벌어지는 다툼을 보았다면, 에릭슨은 사람과 세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만남을 보았다. 그리고 그 만남이 아기 때만이 아니라 늙어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단계마다 놓인 위기라는 말도 무서운 뜻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안 되는 새 요구가 왔고 그것을 넘으면 전보다 나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이론은 나이 든 사람에게도 자랄 자리가 있다고 말한다.
03핵심 포인트
에릭슨은 발달의 동력을 성적 에너지가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에서 찾아 심리사회적이라 했다.
발달을 어린 시절로 끝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여덟 단계로 보았다.
자아를 시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적응하고 성장하는 힘으로 보아 자아심리학을 열었다.
각 단계는 두 힘이 맞서는 위기이며, 위기는 재앙이 아니라 성장의 전환점이다.
해결은 한쪽만 남는 것이 아니라 긍정 쪽이 조금 더 우세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점성원리는 단계가 정해진 순서로 펼쳐지며 앞의 결과가 뒤의 바탕이 된다는 원리다.
04한 줄 예시
05시험 함정
위기를 나쁜 일로 읽는 것 — 여기서는 성장의 전환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긍정 쪽만 남는 것이 좋은 해결이라 보는 것 — 부정 쪽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앞 단계에서 실패하면 끝이라고 보는 것 — 뒤의 경험으로 다시 다루어질 수 있다.
06한눈에 보기
프로이트와 에릭슨
프로이트
성적 에너지가 동력. 다섯 단계로 사춘기까지. 자아는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시달린다. 어린 시절이 성격을 거의 정한다.
VS
에릭슨
사회와의 관계가 동력. 여덟 단계로 죽을 때까지. 자아는 스스로 적응하고 자라는 힘. 뒤의 경험으로 다시 다룰 수 있다.
이 이론의 네 가지 전제
전제
내용
심리사회적
동력은 몸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에 있다
전 생애
발달은 노년까지 이어진다
자아의 힘
자아는 시달리는 존재가 아니라 성장하는 주체다
위기와 덕목
두 힘이 맞서고, 넘으면 강점을 얻는다
더 알아보기
부정 쪽도 필요하다는 말
에릭슨의 단계는 늘 두 힘의 짝으로 적힌다. 신뢰와 불신, 자율성과 수치심, 주도성과 죄책감 하는 식이다. 흔한 오해는 앞쪽만 얻고 뒤쪽은 없애야 한다고 읽는 것인데, 에릭슨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관계에서 선을 넘는다. 죄책감이 없으면 자기 행동을 돌아볼 계기가 사라진다. 그래서 건강한 해결은 긍정 쪽이 우세하되 부정 쪽도 쓸 만큼은 갖춘 균형이다. 이 관점은 실천에서도 유용하다. 지나치게 남을 믿어 반복해서 피해를 입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를 더 키우는 일이 아니라 건강한 불신을 회복하는 일일 수 있고, 죄책감에 짓눌린 사람에게는 반대의 조정이 필요하다. 균형이라는 말이 그저 좋은 말이 아니라 개입의 방향을 정하는 잣대가 되는 자리다.
뒤에서 다시 다룰 수 있다는 것의 실천적 뜻
점성원리는 앞 단계가 뒤 단계의 바탕이 된다고 말하지만, 에릭슨은 앞에서 잘 풀리지 않은 과제가 영영 닫힌다고 보지 않았다. 초기에 안정적인 돌봄을 받지 못해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한 사람도, 이후에 믿을 만한 관계를 오래 경험하면 그 자리가 채워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점이 프로이트와 크게 갈리는 자리이며, 사회복지실천에 큰 함의를 준다. 개입이 늦었다는 이유로 단념하지 않아도 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아동기에 학대를 겪은 성인에게 안전하고 일관된 관계를 제공하는 일, 노년기에 이르러 지난 삶을 정리하도록 돕는 일이 모두 뒤늦은 회복의 자리에 해당한다. 다만 다시 다룰 수 있다는 말이 저절로 회복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려면 그때 얻지 못한 경험을 제공하는 관계와 시간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만드는 일이 실천의 몫이다.
07기출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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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 대 수치감 - 교사
자율성 대 수치감(초기 아동기)의 주요 관계는 부모이며, 학교·교사는 근면성 단계에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