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학 기초한국경찰의 역사
History of the Korean Pol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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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개념 정리
갑오개혁의 경무청에서 시작해 임시정부 경찰, 미군정기, 정부수립 뒤 조직 개편을 거쳐 오늘의 국가경찰·자치경찰 이원 구조에 이른다.
02이해하기
연도와 사건을 짝지어 표로 만들어 두면 순서 문항이 대조 작업으로 바뀐다.
03핵심 포인트
- 경무청관제직장은 조직법, 행정경찰장정은 작용법에 해당하며, 임시정부 경찰이 민주공화제 경찰의 효시로 꼽히고 초대 경무국장은 백범 김구다.
- 미군정기에는 위생 등 행정경찰사무가 떨어져 나가는 비경찰화가 이루어졌고, 예비검속법 등이 1945년에 폐지되었으며 1946년 여자경찰제도, 1947년 중앙경찰위원회가 생겼다.
- 1974년 치안국이 치안본부로, 1991년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승격되었고, 2006년 제주자치경찰단, 2021년 국가수사본부가 설치되었다.
- 문형순은 성산포에서 예비검속자 총살 명령을 거부했고, 안종삼은 구례에서 보도연맹원 480명을 풀어 주었으며, 안병하는 5·18에서 비례원칙을 지시했고, 차일혁은 화엄사 등 문화재를 지켰다.
04한 줄 예시
05기출 지문
O갑오개혁 이후 한국 최초의 경찰조직법은 「경무청관제직장」이다.
갑오개혁으로 경무청을 세우면서 그 조직과 직무를 정한 것이 경무청관제직장이다. 같은 때 나온 행정경찰장정이 작용법이라면 이것은 조직법에 해당한다. 조직법과 작용법을 나누어 짝지어 두면 갑오개혁기의 두 법령이 헷갈리지 않는다.
2026년 1차 12번 문제 보기 → O1919년 3‧ 1운동으로 태어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우리 민족 최초의 민주공화제를 선포하였다. 따라서 임시정부의 경찰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제 경찰로서 민주경찰의 효시라는 제도사적 의의를 가진다.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주공화제를 선포했고 그 아래 경찰을 두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바탕 위에 선 경찰이라는 점에서 민주경찰의 시작으로 꼽힌다.
2026년 1차 12번 문제 보기 → O백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으로 취임하였다.
임시정부의 첫 경무국장은 백범 김구다. 임시정부 경찰이 민주공화제 경찰의 효시라는 평가와 함께 자주 묶여 나오는 사실이다. 임시정부 경찰의 첫머리에 누가 섰는지는 그 조직의 성격을 함께 보여 주는 대목이다.
2026년 1차 12번 문제 보기 → X1991년에 치안국이 경찰청으로 승격되었다.
치안국이 치안본부로 바뀐 것이 1974년이고,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올라선 것이 1991년이다. 1991년의 승격은 치안국이 아니라 치안본부에서 이루어졌다.
2026년 1차 12번 문제 보기 → O차일혁: 구례 화엄사 등 문화재를 수호한 인물로 ‘보관문화훈장’을 수여 받음
차일혁은 빨치산 토벌 중에도 화엄사 등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아 문화재를 지켰다. 그 공으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명령과 문화재 사이에서 문화재를 택한 판단이 뒤에 훈장으로 이어졌다.
2025년 1차 39번 문제 보기 → O김학재: 1998년 강도강간 신고출동 현장에서 피의자로부터 좌측 흉부를 칼로 피습당한 상태에서도 격투를 벌여 범인검거 후 순직하였으며, 2018년 ‘경찰영웅’으로 선정됨
김학재는 1998년 강도강간 신고 현장에서 칼에 찔린 채로도 범인을 붙잡고 순직했다. 2018년 경찰영웅으로 선정되었다. 경찰영웅 선정은 순직과 그 뒤의 예우를 잇는 제도라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한다.
2025년 1차 39번 문제 보기 → O안종삼: 예비검속 된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총살명령에 대해 ‘내가 죽더라도 방면하겠으니 국가를 위해 충성해 달라’고 말한 후 전원 방면함
안종삼은 보도연맹원 총살명령 앞에서 내가 죽더라도 풀어 주겠다며 수백 명을 살렸다. 명령과 양심이 부딪힌 자리에서 사람을 택한 사례로 꼽힌다. 인물과 사건을 맞바꿔 놓는 것이 이 유형의 유일한 함정이므로, 이름마다 그 사람이 있던 자리와 한 일을 짝지어 외운다.
2025년 1차 39번 문제 보기 → X최중락: 1968년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자하문검문소에서 무장공비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청와대를 사수하였으며, 호국경찰의 표상이 됨
1968년 자하문검문소에서 무장공비를 막아 내고 순직한 사람은 최중락이 아니라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경사다. 최중락은 수사경찰의 표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인물과 사건을 짝지어 두어야 이런 뒤바꿈에 걸리지 않는다.
2025년 1차 39번 문제 보기 → O경찰이 담당하였던 위생사무 등 행정경찰사무가 경찰관할에서 분리되는 비경찰화 작업이 진행되었다.
미군정기에는 경찰이 쥐고 있던 위생 같은 행정경찰사무가 떨어져 나갔다. 경찰의 일을 위험방지와 법집행으로 좁힌 비경찰화 작업이다. 비경찰화는 경찰의 일을 덜어 낸 것이고, 같은 시기의 경찰권 분산·민주화 조치와는 겨누는 자리가 다르다.
2024년 1차 13번 문제 보기 → X일제강점기 치안입법이 정리된 시기로 1945년 「보안법」이 폐지되었고, 1948년 「예비검속법」이 순차적으로 폐지되었다.
예비검속법은 1948년이 아니라 미군정기인 1945년에 보안법 등과 함께 폐지되었다. 폐지 시점을 뒤로 미루면 미군정기 법령 정비의 범위가 달라진다.
2024년 1차 13번 문제 보기 → O1946년 여자경찰제도가 신설되었다.
1946년에 여자경찰제도가 새로 생겼다. 여성과 아동을 상대하는 업무를 맡기기 위해 만든 것으로 이 시기 조직 변화의 하나로 꼽힌다. 1946년 여자경찰제도와 1947년 중앙경찰위원회처럼 미군정기의 연도와 제도를 짝지어 두면 순서를 묻는 문제가 풀린다.
2024년 1차 13번 문제 보기 → O1947년 6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중앙경찰위원회를 설치하였다.
1947년에는 6인의 위원으로 이루어진 중앙경찰위원회가 세워졌다. 경찰을 밖에서 들여다보게 하려는 시도였으나 실질적으로 작동하지는 못했다. 6인이라는 인원과 1947년이라는 해를 바꿔 놓는 것이 이 제도에서 가장 흔한 변형이다.
2024년 1차 13번 문제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