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과 1950년대 — 전쟁 고아와 피난민에 대한 응급 구호가 중심이었고, 그 주역은 외국 원조기관(외원기관)이었다. 한국외원단체협의회(KAVA)가 결성되어 활동을 조정했으며, 시설 수용 중심의 보호가 자리 잡았다.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에 기독교사회사업학과가 설치되면서 교육이 시작되었다.
1960년대 — 법제의 기초가 놓였다. 생활보호법(1961)과 아동복리법(1961)이 제정되었고, 공무원연금법(1960)과 산업재해보상보험법(1963)으로 사회보험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아 법은 있고 사업은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
1970년대 — 사회복지사업법이 제정(1970)되어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1970년대 후반 외원기관이 철수하면서 민간 재원이 급감했고, 시설 운영을 국가 보조와 국내 후원으로 옮겨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1980년대 — 사회복지사업법 개정(1983)으로 사회복지관 운영이 국고보조 대상이 되고 「사회복지사」 명칭과 자격이 법에 들어왔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에 사회복지관이 세워지면서 지역사회 중심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1987년 사회복지전문요원이 저소득층 밀집 동사무소에 별정직으로 배치되어, 공공 부문에 사회복지 전문인력이 들어온 첫 사례가 되었다.
1990년대 — 사회복지사업법 개정(1992)으로 사회복지전담공무원과 복지사무 전담기구의 법적 근거가 생겼고, 보건복지사무소 시범사업(1995~1999)이 실시되었다. 1997년 개정은 세 가지를 바꾸었다 — 시설 설치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시설 평가가 의무화, 사회복지사 1급 국가시험 도입이다. 1999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제정되어 2000년 10월부터 시행되었다.
02이해하기
한국 사회복지행정의 앞 시기를 붙잡는 축은 누가 돈을 대는가다. 1950년대는 외원기관, 1970년대 후반 그들이 떠난 뒤로는 국가 보조와 국내 후원, 1980년대 이후로는 국고보조를 받는 사회복지관으로 옮겨 갔다. 그리고 1987년 사회복지전문요원 배치로 공공이 직접 전문인력을 두기 시작한 것이 다음 시기의 문을 연다.
03핵심 포인트
1950년대의 주역은 외원기관이었고 한국외원단체협의회(KAVA)가 활동을 조정했다.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사회사업학과 설치로 사회복지 교육이 시작되었다.
생활보호법과 아동복리법이 1961년 제정되어 공공부조와 아동복지의 기초가 놓였다.
사회복지사업법은 1970년 제정되어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근거가 되었다.
1970년대 후반 외원기관의 철수로 민간 재원이 급감하는 전환이 있었다.
1983년 개정으로 사회복지관이 국고보조 대상이 되고 「사회복지사」 명칭이 법에 들어왔다.
1987년 사회복지전문요원이 별정직으로 동사무소에 배치되었다.
1992년 개정으로 사회복지전담공무원과 복지사무 전담기구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1995~1999년 보건복지사무소 시범사업이 실시되었으나 본사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1997년 개정 — 시설 신고제 전환·시설 평가 의무화·사회복지사 1급 국가시험 도입.
04한 줄 예시
05시험 함정
사회복지사업법의 제정 연도를 1960년대로 적으면 틀린다. 1970년이다.
1987년 사회복지전문요원을 일반직으로 적으면 틀린다. 당시는 별정직이었다.
「1997년 개정으로 시설 설치가 신고제에서 허가제가 되었다」는 방향이 반대다.
보건복지사무소와 사회복지사무소 시범사업을 뒤섞지 말 것 — 보건복지사무소가 1990년대다.
「1950년대에 국가가 구호를 주도했다」로 적으면 틀린다. 외원기관이 주역이었다.
06한눈에 보기
1970년대까지 — 외원과 시설
재원의 주역이 외국 원조기관이었고 보호의 형태는 시설 수용이었다.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 제정으로 법인과 시설의 근거가 생겼으나, 외원기관이 철수하면서 그 자리를 국가 보조와 국내 후원으로 메워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VS
1980년대 이후 — 지역과 공공
1983년 개정으로 사회복지관이 국고보조 대상이 되면서 지역사회 중심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1987년 사회복지전문요원이 배치되어 공공에 전문인력이 들어왔다. 1997년 개정은 신고제 전환과 함께 평가와 국가시험으로 질 관리를 제도화했다.
시기별 전환점
시기
일어난 일
전환의 뜻
1950년대
외원기관 중심 구호, KAVA 결성
민간 외원이 사실상의 전달체계
1961
생활보호법·아동복리법
공공부조와 아동복지의 법적 기초
1970
사회복지사업법 제정
법인·시설의 근거가 생김
1983
사회복지관 국고보조, 「사회복지사」 명칭
지역사회 중심 서비스의 시작
1987
사회복지전문요원(별정직) 배치
공공에 전문인력이 들어옴
1997
신고제 전환·평가 의무화·1급 국가시험
질 관리와 전문성의 제도화
더 알아보기
외원기관의 철수가 남긴 것
1950년대 한국의 사회복지는 사실상 외국 원조기관이 운영했다. 전쟁 고아를 수용하는 시설, 구호물자의 배급, 미망인 보호가 대부분 외원기관의 자금과 인력으로 이루어졌고, 정부의 역할은 승인과 조정에 머물렀다. 한국외원단체협의회(KAVA)가 기관들 사이의 중복을 조정하는 실질적 조정기구 노릇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이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원조 대상국의 지위에서 벗어났고, 원조기관의 관심이 더 가난한 나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남긴 것이 셋이다.
첫째, 시설 중심 구조가 굳었다. 외원은 시설에 집중되었으므로, 지역사회 안에서 지원하는 방식보다 수용해서 보호하는 방식이 표준이 되었다. 이 유산이 오래 남아 뒤에 탈시설과 지역사회 중심 서비스로 전환하는 데 큰 과제가 되었다.
둘째, 재정의 공백이 생겼다. 외원이 끊긴 자리를 국가 보조가 곧바로 메우지 못했다. 시설들은 국고보조와 국내 후원금을 함께 찾아야 했고, 이 시기에 후원 개발과 재정 관리가 시설 운영의 절박한 과제로 떠올랐다. 사회복지행정이 실무적으로 필요해진 계기다.
셋째, 전문성의 요구가 늘었다. 외원기관은 자체 기준으로 운영했으나 국고보조를 받게 되면 공적 기준과 회계를 따라야 한다.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 제정으로 법인과 시설의 요건이 정해진 것이 이 흐름 위에 있다.
곧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행정이 실무적 필요로 등장한 시점은 외원의 철수와 국가 보조로의 전환이 겹친 1970년대이며, 이 전환이 앞 카드에서 본 미국의 궤적(민간→공공)과는 반대 방향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1997년 개정이 한꺼번에 바꾼 세 가지
1997년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은 이 법의 여러 개정 가운데 행정의 관점에서 가장 큰 폭이었다. 세 가지가 동시에 바뀌었고, 셋은 하나의 논리로 이어져 있다.
첫째, 시설 설치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현행 제34조제2항이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고 정하는 형태다. 진입 문턱을 낮춘 것이며, 목적은 민간의 참여를 늘려 서비스 공급을 확대하는 데 있었다.
둘째, 시설 평가가 의무화되었다. 현행 제43조의2가 「보건복지부장관과 시·도지사는 …시설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거나 시설의 감독·지원 등에 반영할 수 있으며」로 정하고, 시행규칙 제27조의2제1항이 3년마다 실시하도록 한다.
셋째, 사회복지사 1급 국가시험이 도입되었다. 자격을 서류 심사가 아니라 시험으로 검증하는 체계로 옮긴 것이다.
셋을 잇는 논리는 이렇다. 진입을 열면 공급은 늘지만 질을 보장할 장치가 사라진다. 허가제는 사전에 거르는 방식인데 그것을 없앴으므로, 사후에 거르는 장치가 필요해진다. 그 장치가 평가이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의 자격을 검증하는 것이 국가시험이다. 곧 사전 규제에서 사후 관리로 축을 옮긴 개정이다.
이 전환이 사회복지행정에 준 영향이 크다. 기관에게 평가에 대비하는 일이 정규 업무가 되었고, 기록·규정·회계를 갖추는 일이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뒤에 볼 시설 평가제도와 서비스 질 관리 논의가 모두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부작용도 함께 지적된다. 3년 주기의 평가가 평가를 위한 준비에 자원을 쓰게 만들고, 문서로 확인 가능한 항목에 치중해 앞서 본 목표전치가 나타난다는 비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