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인보상조와 일제·미군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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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사회의 인보상조는 마을 단위의 상호부조 관행이며, 오늘의 지역사회복지에 선례로 인용된다. 두레는 마을 사람들이 농사일을 함께 하는 공동 노동 조직이다. 모내기와 김매기처럼 일손이 몰리는 때에 마을 전체가 순서대로 서로의 논밭을 돌아가며 일했다. 품앗이는 두레보다 작은 단위로, 개인 사이에 노동을 주고받는 방식이다. 오늘 내가 도와주면 뒷날 상대가 갚는다. 계(契)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돈이나 곡식을 모으는 조직이다. 상을 치르기 위한 상포계, 혼인을 위한 혼상계, 학문을 위한 학계처럼 목적이 다양했다. 위험의 분산과 목돈 마련이라는 점에서 오늘의 보험과 협동조합에 견주어진다. 향약(鄕約)은 조선시대 향촌의 자치 규약이다. 덕업상권(좋은 일은 서로 권한다), 과실상규(잘못은 서로 규제한다), 예속상교(예로써 서로 사귄다), 환난상휼(어려움은 서로 돕는다)의 네 덕목을 두었다. 앞의 세 항목이 규범과 교화라면 환난상휼이 상부상조의 항목이다. 국가의 구휼제도로 의창(평상시에 곡식을 저장했다가 흉년에 대여), 상평창(곡가 조절과 구휼), 진휼청, 혜민서(빈민 의료), 동서대비원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 1944년 조선구호령이 제정되어 근대적 형태의 공적 부조가 도입되었으나, 실질은 전시 체제의 통제와 회유를 위한 것이었고 적용 범위도 좁았다. 인보관 형태의 시설도 세워졌으나 식민 통치의 일환이라는 성격을 벗지 못했다. 미군정기(1945~1948) — 전재민과 귀환 동포에 대한 구호가 중심이었고, 외국 원조기관의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제도의 수립보다 응급 구호가 앞선 시기였으며, 그 구조가 1970년대 외원기관의 철수 때까지 이어졌다.
전통 인보상조를 붙잡는 요령은 「무엇을 주고받는가」다. 두레와 품앗이는 노동을, 계는 돈과 곡식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두레와 품앗이의 차이는 단위다 — 두레는 마을 전체의 공동 노동, 품앗이는 개인 사이의 교환이다. 향약에서는 네 덕목 가운데 환난상휼만이 상부상조에 해당한다는 점이 고정 출제점이다.
  1. 두레는 마을 사람들이 순서대로 서로의 논밭을 돌며 일하는 공동 노동 조직이다.
  2. 품앗이는 두레보다 작은 단위로 개인과 개인 사이에 노동을 주고받는 방식이다.
  3. 두레와 품앗이를 가르는 기준은 마을 전체가 함께하느냐 개인끼리 주고받느냐의 단위다.
  4. 계(契)는 상장례나 혼인 같은 목적을 위해 돈이나 곡식을 모으는 조직이다.
  5. 계는 위험의 분산과 목돈 마련이라는 점에서 오늘의 보험·협동조합에 견주어진다.
  6. 향약은 조선시대 향촌 사회의 자치 규약으로 네 가지 덕목을 두어 운영되었다.
  7. 향약이 내건 네 덕목은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의 넷이었다.
  8. 이 가운데 환난상휼만이 어려움을 서로 돕는 상부상조에 해당하는 항목이다.
  9. 국가의 구휼제도로 의창·상평창·진휼청·혜민서·동서대비원이 있었다.
  10. 1944년 조선구호령은 근대적 공적 부조의 형태였으나 실질은 전시 통제와 회유였다.
  1. 두레와 품앗이를 맞바꾼 선지가 흔하다 — 두레가 마을 단위, 품앗이가 개인 간이다.
  2. 향약의 네 덕목에서 환난상휼이 상부상조라는 점을 다른 덕목으로 바꾼 선지를 조심할 것.
  3. 계를 노동 교환 조직으로 적으면 틀린다. 돈이나 곡식을 모으는 조직이다.
  4. 「조선구호령은 근대적 사회복지의 실질적 출발」로 적으면 과장이다. 전시 통제의 성격이 컸다.
  5. 의창과 상평창을 뒤섞지 말 것 — 상평창은 곡가 조절 기능이 함께 있다.
전통 두레·품앗이·계·향약 — 마을 안의 상부상조조선 의창·상평창·진휼청 — 국가의 구휼1944 조선구호령 — 근대적 형태이나 전시 통제의 성격1945~1948 미군정 — 전재민 응급 구호와 외원기관의 등장
전통 인보상조
형태무엇을 주고받나단위
두레노동마을 전체의 공동 노동
품앗이노동개인 사이의 교환
계돈이나 곡식목적별 조직(상포계·혼상계·학계)
향약규범과 상부상조향촌의 자치 규약 — 네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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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인보상조를 오늘의 실천에 견줄 때 유의할 점

두레·품앗이·계·향약은 오늘의 지역사회복지에 자주 인용된다. 「우리에게도 상부상조의 전통이 있었다」는 서술이 그것이다. 이 인용에는 값과 함정이 함께 있다. 값이 있는 대목. 첫째, 상부상조가 외래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지역 단위의 상호부조는 어느 사회에나 있었고 우리도 다르지 않다. 둘째, 호혜성(reciprocity)의 원리를 보여 준다. 품앗이는 일방적 시혜가 아니라 주고받는 관계이며, 받는 사람이 낮은 자리에 놓이지 않는다. 오늘의 시간은행이나 품앗이형 돌봄이 이 원리를 되살리려는 시도다. 셋째, 자율적 조직화의 선례다. 계와 향약은 관이 만든 것이 아니라 주민이 만들고 운영한 조직이며, 뒤에 볼 주민 조직화의 역사적 자산이 된다. 함정도 있다. 첫째, 관계망 안의 사람만 도왔다. 마을 구성원이어야 두레와 계에 들 수 있었고, 떠돌이나 배제된 사람은 대상이 아니었다. 오늘의 사회복지가 권리로서 누구에게나 미쳐야 하는 것과 다르다. 둘째, 갚을 수 있는 사람만 참여할 수 있었다. 품앗이는 노동력이 있어야 성립하므로, 아프거나 늙어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주고받기의 바깥에 놓였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빠지는 구조다. 셋째, 위계와 규율이 함께 있었다. 향약의 네 덕목 가운데 셋은 규범과 교화이며 과실상규는 잘못을 서로 규제하는 것이다. 상부상조와 통제가 한 몸이었고, 그 규범은 신분 질서 안에서 작동했다. 그래서 인용의 방식이 중요하다. 전통을 근거로 「국가가 아니라 지역이 돌보면 된다」고 말하면, 앞 장에서 본 비공식 돌봄 강조의 위험이 그대로 재현된다. 정확한 인용은 호혜성과 자율적 조직화의 원리를 배우되, 권리성과 보편성은 근대 제도에서 얻는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구호령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1944년 조선구호령은 우리 근대 공적 부조의 첫 형태로 언급되지만, 그 성격을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형식적으로는 근대적이었다. 일본의 구호법을 본떠 만든 것으로, 대상을 정하고(65세 이상 노약자, 13세 이하 아동, 임산부, 불구·질병으로 노무에 지장이 있는 자), 급여의 종류를 두고(생활부조·의료부조·조산부조·생업부조), 행정 절차를 정했다. 이전의 시혜적 구휼과 달리 법에 근거한 제도의 모습을 갖췄다. 실질은 달랐다. 첫째, 시기가 1944년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에 제정되었으며, 전시 체제에서 민심을 다독이고 노동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둘째, 적용 범위가 좁았다. 대상 요건이 엄격했고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실제 수급자는 매우 적었다. 셋째, 권리성이 없었다. 급여는 은혜였지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었으며, 불복할 통로도 없었다. 넷째, 식민 통치의 도구였다는 성격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남은 것이 있다. 해방 후에도 이 법령이 상당 기간 효력을 유지하다가 1961년 생활보호법으로 대체되었다. 곧 우리 공공부조의 초기 틀이 이 법령의 형태를 이어받은 셈이며, 대상을 근로능력으로 가르는 방식이나 급여 종류의 구성에 그 흔적이 남았다. 평가의 요령은 형식과 실질을 나누어 보는 것이다. 「근대적 공적 부조의 형태가 도입되었다」는 서술은 맞고, 「우리 사회복지가 이때 시작되었다」는 서술은 과장이다. 시험에서도 이 구분을 묻는 선지가 나오며, 조선구호령을 실질적 출발로 격상시킨 선지가 오답으로 배치된다. 미군정기(1945~1948)도 비슷하게 보아야 한다. 이 시기의 활동은 전재민과 귀환 동포에 대한 응급 구호였고 제도의 수립은 뒤로 미뤄졌다. 앞 장에서 본 대로 그 자리를 외국 원조기관이 메웠으며, 그 구조가 1970년대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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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외국원조기관은 구호 및 생활보호 등에 기여하였다.

한국전쟁 뒤 외국원조기관들이 구호물자와 시설 운영으로 전쟁 피해자 구호와 생활보호를 떠받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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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사회복지관 국고보조금 지침이 마련되었다.

사회복지관 운영·국고보조 지침은 1980년대에 마련되었고, 1989년부터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안 사회복지관 건립이 의무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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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전개된 지역사회 생활권 보장을 위한 활동은 사회행동모델에서 비롯되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속 철거 반대·생존권 투쟁 같은 주민운동은 대결과 압력을 쓰는 사회행동모델의 성격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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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재가복지서비스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1992년 사회복지관에 재가복지봉사센터가 붙어 설치되면서 1990년대에 재가복지서비스가 전국으로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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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도입된 지역사회서비스투자사업의 사회서비스이용권 비용 지급․정산은 사회보장정보원이 담당한다.

지역사회서비스투자사업의 이용권 비용 청구·지급·정산 업무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사회보장정보원에 맡긴다(사회서비스 이용 및 이용권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7조 제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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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으로 정부의 책임성 강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은 1999년 제정돼 2000년 10월부터 시행됐다 — 2001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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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협동조합기본법」의 제정으로 자활공동체가 보다 쉽게 협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게 됨

협동조합 기본법은 2012년 제정·시행돼 자활공동체도 협동조합을 세울 길이 열렸다 — 2007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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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 구축

사회복지통합관리망 행복e음은 2010년 1월 개통해 흩어진 급여·자격 정보를 개인·가구별로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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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ㆍ군ㆍ구 희망복지지원단 운영으로 통합사례관리 시행

희망복지지원단은 2012년 4월 시·군·구에 설치돼 통합사례관리를 맡았다 — 2015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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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주민자치센터를 행정복지센터로 명칭 변경

행정복지센터로의 명칭 변경은 2016년 읍·면·동 복지허브화와 함께 이루어졌다 — 2018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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