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전문직 확립기 — 플렉스너 비판과 밀포드 회의

미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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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사회복지는 「선한 일이기는 하나 전문직인가」라는 물음 앞에 섰다. 1915년 전미자선교정회의에서 의학교육 개혁으로 이름난 아브라함 플렉스너(Abraham Flexner)가 「사회복지는 전문직인가(Is Social Work a Profession?)」를 발표하며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전환점이 되었다. 그가 든 기준은 여섯 가지였다 — 개인의 책임 아래 지적으로 수행되는 일일 것, 과학적 지식체계에 기초할 것, 실용적 목적을 가질 것, 교육과 훈련으로 전수 가능한 기술을 가질 것, 전문직 단체를 이룰 것, 이타적 동기를 가질 것. 사회복지는 이 가운데 고유한 지식체계와 전수 가능한 독자적 기술, 그리고 전문 문헌이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특히 뼈아팠던 지적은 사회복지사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다른 전문가에게 연결해 주는 매개적(mediating)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 비판은 사회복지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밀어붙였다. 1917년 리치먼드의 『사회진단』이 고유한 방법을 내놓았고, 전문직 단체가 잇따라 만들어졌으며, 정신분석이 들어와 이론적 기반을 채웠고, 교육은 1904년 뉴욕자선학교의 1년 과정에서 대학원 과정으로 자랐다. 밀포드 회의(Milford Conference)는 그 정리 작업이었다. 1920년대에 여러 분야의 개별사회사업가들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밀포드에 모여 논의한 끝에 1929년 보고서를 냈고, 아동·가족·의료·학교 등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개별사회사업에는 공통된 지식과 기술이 있다는 제네릭(generic) 개별사회사업 개념을 확인했다. 분야별로 흩어져 있던 실천을 하나의 전문직으로 묶은 선언이었다.
바깥의 권위자가 「당신들은 아직 전문직이 아니다」라고 못 박은 사건이 사회복지를 전문직으로 만들었다. 무엇이 없다고 지적당했는지가 그대로 채워야 할 목록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유한 지식과 방법, 교육기관, 전문직 단체, 그리고 분야를 가로지르는 공통기반은 모두 그 목록에 하나씩 답하려는 노력에서 만들어졌다.
  1. 1915년 플렉스너가 전미자선교정회의에서 「사회복지는 전문직인가」를 발표해 아니다라고 답했다.
  2. 근거는 고유한 지식체계·전수 가능한 독자적 기술·전문 문헌이 없다는 것이었다.
  3. 사회복지사가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다른 전문가에게 연결하는 매개적 일을 한다는 지적이 특히 아팠다.
  4. 1917년 리치먼드의 『사회진단』이 고유한 방법을 내놓아 이 비판에 답하는 첫 자리가 되었다.
  5. 교육은 1898년 뉴욕자선조직협회 하계강습 → 1904년 뉴욕자선학교 1년 과정으로 제도화되었다.
  6. 1929년 밀포드 회의 보고서가 분야를 가로지르는 제네릭 개별사회사업의 공통기반을 확인했다.
  7. 1957년 그린우드는 「전문직의 속성」에서 사회복지가 이미 전문직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았다.
  8. 이 시기를 전문직 확립기라 부르며, 비판이 곧 전문화의 목록이 되었다는 점이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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