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가에 들어가 산다→이웃으로 관계를 맺는다→삶의 조건을 자료로 밝힌다→자료로 여론과 입법을 움직인다
3R 로 본 인보관의 활동| 축 | 무엇을 했는가 | 오늘로 이어진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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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주(Residence)** | 활동가가 빈민가에 이사해 이웃으로 살았다 | 현장 중심 실천, 주민과의 신뢰관계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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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Research)** | 가구 실태·임금·주거·질병을 자료로 모았다 | 지역사회 욕구조사, 근거에 기초한 실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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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Reform)** | 아동노동·주거·위생 관련 입법 운동을 벌였다 | 사회행동, 정책옹호, 캠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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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함께 사는 것」이 방법이 되는가
인보관운동의 첫 글자가 거주인 것은 단순한 헌신의 표시가 아니다. 밖에서 찾아가 조사하는 사람에게 주민은 심사받는 자리에 서지만, 옆집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웃으로 말한다. 관계의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 방문 조사로는 「아이가 학교에 안 간다」까지만 보이지만, 함께 살면 그 아이가 낮에 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그 임금이 없으면 집세를 못 낸다는 것까지 보인다. 그래서 인보관의 조사는 통계이면서 동시에 생활에서 길어 올린 자료였고, 그 구체성이 입법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헐하우스가 펴낸 지도 형식의 조사(임금과 국적을 구획별로 표시한 『Hull-House Maps and Papers』)가 시카고의 노동·주거 정책 논의에 쓰인 것이 그 예다. 오늘의 실천에서 「현장에 상주하는 사회복지사」, 「찾아가는 서비스」, 「당사자 참여 조사」가 강조되는 뿌리가 여기에 있다.
두 운동이 하나로 합쳐지기까지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운동은 같은 시기에 같은 도시에서 서로를 비판하며 자랐다. 자선조직협회 쪽은 인보관이 「무분별한 시혜로 의존을 키운다」고 보았고, 인보관 쪽은 자선조직협회가 「원인은 그대로 두고 사람만 나무란다」고 보았다. 이 갈라짐은 20세기 중반까지 개별사회사업 · 집단사회사업 · 지역사회조직이라는 세 방법의 분립으로 남았고, 학교의 전공과 협회까지 따로 있었다. 문제는 이 분립이 클라이언트를 조각냈다는 데 있다 — 실직과 가족 갈등과 동네의 자원 부족을 함께 겪는 한 사람이 세 기관을 돌며 세 번 처음부터 이야기해야 했다. 1970년 바틀렛의 『사회복지실천의 공통기반』과 1973년 핀커스와 미나한의 4체계모델은 이 조각남을 되돌리려는 시도였고, 그 결론이 오늘의 통합적 접근이다. 두 운동은 대립으로 시작해 한 실천가의 두 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