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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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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관운동(Settlement House Movement)은 지식인과 대학생이 빈민가에 직접 들어가 함께 살면서 주민과 관계를 맺고, 교육·문화 활동을 열고, 조사를 바탕으로 제도를 바꾸려 한 운동이다. 1884년 런던 이스트엔드에 새뮤얼 바네트가 세운 토인비홀(Toynbee Hall)이 출발점이고, 미국에서는 1886년 뉴욕의 근린길드(Neighborhood Guild), 1889년 시카고의 헐하우스(Hull House)로 이어졌다. 헐하우스를 세운 제인 애덤스(Jane Addams)는 뒤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활동의 뼈대는 흔히 3R로 요약된다. 거주(Residence) — 활동가가 그 동네에 산다. 조사(Research) — 주민의 삶을 자료로 밝힌다. 개혁(Reform) — 밝혀진 사실로 제도를 바꾼다. 자선조직협회가 「도움을 줄 자격이 있는가」를 물었다면, 인보관은 「이 동네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래서 빈곤의 원인을 개인이 아니라 환경과 사회구조에서 찾았고, 열악한 주거·위생·장시간 노동·아동노동을 문제로 삼았다. 성인교육과 야학, 유아방과 놀이터, 이민자를 위한 언어·직업 교육, 노동조합 지원이 활동 내용이었다. 여기서 집단사회사업(group work)과 지역사회조직, 나아가 사회행동의 방법이 자라났다. 오늘의 사회복지관과 주민조직화 실천이 이 계보를 잇는다. 활동가의 자리도 달랐다. 자선조직협회의 우애방문자가 도움을 주는 쪽에 서서 받는 쪽을 심사했다면, 인보관의 활동가는 같은 골목의 이웃으로 살면서 함께 겪었다. 주민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푸는 동반자로 본 이 자리 잡기가 뒤에 강점관점과 임파워먼트, 당사자 참여의 원칙으로 이어진다.
돕겠다고 찾아가 조사하고 돌아오는 대신, 아예 그 동네로 이사를 온 사람들이다. 이웃으로 살면서 함께 겪었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골목의 조건에 있다는 것이 보였고, 그래서 처방도 훈계가 아니라 제도의 개혁이 되었다. 어디에 서서 보느냐가 무엇을 문제로 삼느냐까지 바꾸어 놓은 셈이며, 이 자리 바꿈 자체가 방법이었다.
  1. 1884년 런던 토인비홀(새뮤얼 바네트)이 출발점이며 이스트엔드 빈민가에 세워졌다.
  2. 미국에서는 1886년 뉴욕 근린길드, 1889년 시카고 헐하우스(제인 애덤스)로 이어졌다.
  3. 3R — 거주(Residence)·조사(Research)·개혁(Reform)이 활동의 뼈대다.
  4. 빈곤의 원인을 개인이 아니라 환경과 사회구조에서 찾은 점이 자선조직협회와 갈린다.
  5. 주거·위생·아동노동·장시간 노동을 문제로 삼아 입법과 제도 개혁 운동을 벌였다.
  6. 성인교육·야학·유아방·이민자 교육·노동조합 지원이 구체적 활동 내용이었다.
  7. 집단사회사업과 지역사회조직, 사회행동의 방법적 기원이 여기에 있다.
  8. 활동가는 주민과 함께 사는 이웃의 자리에 섰고, 시혜자가 아니라 동반자를 지향했다.
  1. 인보관을 「무료 시설 운영」으로 축소해 읽지 않는다. 활동의 핵심은 서비스 제공이 아니라 함께 살며 조사하고 제도를 바꾸는 것이었고, 조사와 개혁이 빠지면 인보관운동이 아니다.
  2. 토인비홀이 1884년, 헐하우스가 1889년이다. 미국 최초의 인보관은 헐하우스가 아니라 1886년 뉴욕의 근린길드라는 점이 자주 출제된다.
  3. 자선조직협회와의 대조를 뒤집지 않는다. 개인의 변화를 겨눈 쪽이 자선조직협회, 환경의 변화를 겨눈 쪽이 인보관운동이다.
  4. 두 운동을 선악으로 나누지 않는다. 오늘의 실천은 자선조직협회에서 사정과 개별화를, 인보관에서 환경 개입과 옹호를 함께 물려받았으며 통합적 접근은 둘의 합류점이다.
빈민가에 들어가 산다이웃으로 관계를 맺는다삶의 조건을 자료로 밝힌다자료로 여론과 입법을 움직인다
3R 로 본 인보관의 활동
축무엇을 했는가오늘로 이어진 것
**거주(Residence)**활동가가 빈민가에 이사해 이웃으로 살았다현장 중심 실천, 주민과의 신뢰관계 형성
**조사(Research)**가구 실태·임금·주거·질병을 자료로 모았다지역사회 욕구조사, 근거에 기초한 실천
**개혁(Reform)**아동노동·주거·위생 관련 입법 운동을 벌였다사회행동, 정책옹호, 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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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함께 사는 것」이 방법이 되는가

인보관운동의 첫 글자가 거주인 것은 단순한 헌신의 표시가 아니다. 밖에서 찾아가 조사하는 사람에게 주민은 심사받는 자리에 서지만, 옆집에 사는 사람에게는 이웃으로 말한다. 관계의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 방문 조사로는 「아이가 학교에 안 간다」까지만 보이지만, 함께 살면 그 아이가 낮에 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그 임금이 없으면 집세를 못 낸다는 것까지 보인다. 그래서 인보관의 조사는 통계이면서 동시에 생활에서 길어 올린 자료였고, 그 구체성이 입법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헐하우스가 펴낸 지도 형식의 조사(임금과 국적을 구획별로 표시한 『Hull-House Maps and Papers』)가 시카고의 노동·주거 정책 논의에 쓰인 것이 그 예다. 오늘의 실천에서 「현장에 상주하는 사회복지사」, 「찾아가는 서비스」, 「당사자 참여 조사」가 강조되는 뿌리가 여기에 있다.

두 운동이 하나로 합쳐지기까지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운동은 같은 시기에 같은 도시에서 서로를 비판하며 자랐다. 자선조직협회 쪽은 인보관이 「무분별한 시혜로 의존을 키운다」고 보았고, 인보관 쪽은 자선조직협회가 「원인은 그대로 두고 사람만 나무란다」고 보았다. 이 갈라짐은 20세기 중반까지 개별사회사업 · 집단사회사업 · 지역사회조직이라는 세 방법의 분립으로 남았고, 학교의 전공과 협회까지 따로 있었다. 문제는 이 분립이 클라이언트를 조각냈다는 데 있다 — 실직과 가족 갈등과 동네의 자원 부족을 함께 겪는 한 사람이 세 기관을 돌며 세 번 처음부터 이야기해야 했다. 1970년 바틀렛의 『사회복지실천의 공통기반』과 1973년 핀커스와 미나한의 4체계모델은 이 조각남을 되돌리려는 시도였고, 그 결론이 오늘의 통합적 접근이다. 두 운동은 대립으로 시작해 한 실천가의 두 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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