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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조직협회와 우애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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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y, COS)는 1869년 런던에서 시작되어 1877년 미국 뉴욕주 버팔로로 건너간 조직으로, 난립하던 민간 자선을 조사하고 등록하고 조정해 중복과 낭비를 막으려 한 운동이다. 이름 그대로 목적은 자선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조직하는 것이었다. 활동의 중심에는 우애방문자(friendly visitor)가 있었다. 주로 중산층 부인들로 이루어진 무보수 자원봉사자였고, 빈곤가정을 직접 방문해 생활 상태를 조사하고 기록했으며, 근면·절제·저축 같은 덕목을 권했다. 「금품이 아니라 친구를(Not alms, but a friend)」이라는 표어가 이 활동의 성격을 요약한다 — 물질 급여보다 인격적 감화를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생각이었다. 빈곤을 보는 눈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에 기울어 있었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가치 있는 빈민(worthy poor)과 그렇지 않은 가치 없는 빈민(unworthy poor)을 갈랐고, 무차별적 시혜는 게으름을 조장한다고 보았다. 오늘의 눈으로는 낙인을 찍는 관점이지만, 이 운동이 남긴 조사·기록·사정·기관 간 조정의 방법은 그대로 개별사회사업(casework)과 사례관리, 그리고 지역사회조직의 협의·조정 기능으로 이어졌다. 자원봉사자에서 유급 직원으로, 다시 훈련받은 전문가로 옮겨 간 것도 이 조직 안에서였다. 전문직으로 가는 통로가 된 것도 이 조직이다. 방문 건수가 늘고 기록이 쌓이자 무보수 자원봉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유급 직원이 생겼고, 유급 직원에게는 훈련이 필요해져 1898년 뉴욕자선조직협회가 하계강습을 열었으며, 이것이 1904년 뉴욕자선학교의 1년 과정으로 자라 사회복지 교육의 출발점이 되었다. 자선의 조직화가 실천의 전문화를 낳은 셈이다.
여러 자선단체가 같은 집을 각각 찾아가고 다른 집은 아무도 찾지 않던 시절, 「누가 어디를 돕고 있는지 먼저 적어 두자」에서 시작한 운동이다. 도우려는 마음보다 기록과 조정이 먼저였다는 점이 이 운동을 오늘의 실천으로 잇는 다리가 되었다. 빈곤을 보는 눈은 뒤에 완전히 뒤집혔지만, 조사하고 적고 맞추는 그 방법만은 그대로 남았다.
  1. 1869년 런던에서 시작되었고, 미국에서는 1877년 뉴욕주 버팔로에 처음 세워졌다.
  2. 목적은 자선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조사·등록·조정으로 중복구제와 낭비를 막는 데 있었다.
  3. 우애방문자는 중산층 부인 중심의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가정을 방문해 조사하고 교화했다.
  4. 표어 「금품이 아니라 친구를」은 물질 급여보다 인격적 감화를 앞세운 관점을 보여 준다.
  5.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도덕적 결함에서 찾아 가치 있는 빈민과 없는 빈민을 갈랐다.
  6. 개별사회사업(casework)·사례관리·기관 간 조정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7. 메리 리치먼드가 『사회진단』(1917)으로 조사와 사정의 절차를 체계화하면서 방법론이 자리 잡았다.
  8. 자원봉사자 → 유급 직원 → 훈련받은 전문가로 옮겨 가며 전문직화의 통로가 되었다.
  1.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운동을 뒤바꾸기 쉽다. 빈곤의 원인을 개인에서 찾고 개별사회사업으로 이어진 쪽이 자선조직협회이고, 환경에서 찾고 집단사회사업·지역사회조직으로 이어진 쪽이 인보관운동이다.
  2. 「조직」의 뜻을 주민 조직화로 읽지 않는다. 여기서 조직화의 대상은 주민이 아니라 자선단체들이며, 오늘의 서비스 연계·조정에 해당한다.
  3. 우애방문자를 유급 직원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출발은 무보수 자원봉사였고, 조사와 기록의 부담이 커지면서 뒤에 유급 직원이 생겼다.
  4. 설립 연도를 섞기 쉽다. 런던 1869년, 미국 버팔로 1877년이며, 인보관인 토인비홀 1884년보다 앞선다.

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운동

자선조직협회(COS)

인보관운동

자선조직협회가 남긴 것
당시의 활동오늘의 실천
**등록부와 사례기록**기록과 정보관리, 중복수급 확인
**가정방문 조사**가정방문과 사정(assessment)
**단체 간 사례 조정**서비스 연계·조정, 사례회의
**우애방문자와의 관계**전문적 관계와 개별화
**욕구별 대상 선별**자격 요건 판정과 우선순위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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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을 찍은 운동이 어떻게 실천의 기원이 되었는가

자선조직협회의 관점은 오늘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가난을 게으름과 음주와 낭비의 결과로 보았고, 도움을 줄 사람과 주지 않을 사람을 갈랐으며, 방문의 목적에 훈계와 감화가 들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운동이 사회복지실천의 기원으로 꼽히는 이유는 방법 때문이다. 그전까지 자선은 주는 사람의 마음에 달린 일이었지만, 이 운동은 먼저 알아보고(조사) 적어 두고(기록) 서로 맞추어(조정) 준다는 절차를 만들었다. 절차가 생기자 훈련이 필요해졌고, 훈련이 필요해지자 학교가 생겼으며, 학교가 생기자 지식이 쌓여 전문직이 되었다. 관점은 뒤에 뒤집혔지만 방법은 남은 셈이다. 그래서 이 운동을 평가할 때는 가치(개인 책임론)와 방법(조사·기록·조정)을 갈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오늘의 실천은 방법을 물려받되 가치는 강점관점과 사회정의로 바꾸어 놓았다.

리치먼드가 세운 다리

메리 리치먼드(Mary Richmond)는 볼티모어 자선조직협회의 유급 직원으로 시작해 우애방문자를 훈련하는 일을 맡았고, 이 경험을 정리해 1917년 『사회진단(Social Diagnosis)』을 냈다. 이 책이 한 일은 「좋은 마음으로 잘해 보라」던 자리에 절차를 놓은 것이다 —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서 어떻게 모으고, 서로 어긋나는 진술을 어떻게 견주며,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지를 적었다. 1922년의 『개별사회사업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실천을 「개인 대 개인의 관계를 통해 사람과 사회환경 사이의 조정을 이루어 인격을 발달시키는 과정」으로 정의했다. 이 정의에 이미 환경 속의 인간이 들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플렉스너가 1915년에 「사회복지는 전문직이 아니다」라고 했을 때 가장 아픈 지적이 고유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리치먼드의 두 책이 바로 그 자리를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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