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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제 기능을 인정한다는 것의 뜻
사회복지가 사회통제의 기능을 함께 수행한다는 지적은 이 전문직에게 불편하다. 선의로 하는 일이 체제 유지의 도구로도 쓰인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적을 정면으로 보는 것이 실천의 자기 이해에 필요하다.
피븐과 클로워드의 분석. 그들은 미국의 구빈 제도가 확대되고 축소되는 시기를 살펴, 사회 불안이 커질 때 확대되고 잠잠해지면 축소되는 양상을 발견했다. 빈곤이 심해져서가 아니라 소요와 저항이 커져서 급여가 늘어났고, 안정되면 다시 줄었다는 것이다. 곧 구빈은 빈곤에 대한 응답이면서 동시에 질서에 대한 응답이라는 분석이다.
미시 수준에서도 나타난다. 실천가는 클라이언트가 규범에 맞게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약속을 지키고, 일자리를 구하고, 절제하도록. 이것이 그 사람에게 이롭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가 기대하는 행동으로 이끄는 것이기도 하다. 앞 장에서 본 하젠펠드의 인간변화기술이 이 자리에 있다.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 기능을 부인하는 것도, 그것에 순응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의식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내가 지금 하는 개입이 이 사람의 이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주변의 불편을 줄이기 위한 것인가를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판단의 기준은 앞 장에서 본 대로 클라이언트의 이익이 앞선다는 것이다. 이웃의 민원 때문에, 기관의 편의 때문에, 실적 때문에 하는 개입은 통제이며, 그것을 원조로 포장하면 신뢰가 무너진다.
그리고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개인을 규범에 맞추는 것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 일자리가 없어 구직을 못 하는 경우, 돌봄이 없어 학교를 못 보내는 경우 — 그 조건을 다루는 것이 실천이다. 앞 장에서 본 비판의식이 사회통제로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장치다.
자기결정이 개인주의와 민주주의 양쪽에서 오는 것
자기결정(self-determination)은 사회복지실천의 핵심 원칙인데, 두 이념에서 각각 다른 근거로 나온다. 그 차이를 보면 이 원칙의 폭이 이해된다.
개인주의에서 오는 자기결정. 개인은 자기 삶의 주인이며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근거는 개인의 자율성과 존엄에 있다. 이 관점에서 자기결정은 간섭받지 않을 권리에 가깝다 — 전문가가 판단을 강요하지 않고,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삶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오는 자기결정.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근거는 평등과 참여에 있다. 이 관점에서 자기결정은 결정 과정에 들어갈 권리에 가깝다 — 서비스의 내용을 정하는 자리에 당사자가 있어야 하고, 나아가 제도를 만드는 자리에도 있어야 한다.
두 근거가 실천에서 다르게 작동한다. 개인주의적 자기결정은 「이 사람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로 나타나고, 민주주의적 자기결정은 「이 사람이 참여해 함께 정한다」로 나타난다. 앞은 소극적이고 뒤는 적극적이다.
둘 다 필요한 이유. 개인주의적 자기결정만 있으면 「본인이 거부했으니 우리는 할 일을 다 했다」로 끝날 수 있다. 정보가 없거나 선택지가 없어서 거부한 것일 수도 있는데 그것을 묻지 않는다. 민주주의적 자기결정은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까지 요구하며, 앞 장에서 본 임파워먼트가 그 실천 형태다.
한계도 있다. 자기결정은 무제한이 아니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심각한 해가 되는 경우, 법적 제약이 있는 경우, 판단 능력이 제한된 경우에 제한된다. 다만 그 제한은 최소한이어야 하고 근거가 설명되어야 하며, 제한하는 동안에도 의사를 확인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