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본다→혼자가 아님을 안다→도움을 주어 본다→자기 무늬를 확인한다→다르게 해 본다
열한 가지 요인| 요인 | 무엇이 힘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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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고취** | 나아진 사람을 눈앞에서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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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성** | 「나만 그런 게 아니다」를 확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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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전달** | 교육과 성원들의 경험·조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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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타심** | 남에게 도움이 되어 보는 경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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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가족집단의 교정적 재현** | 원가족의 관계를 다르게 다시 겪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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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기술의 개발** | 관계 기술을 안전한 자리에서 익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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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방행동** | 다른 사람의 방식을 보고 배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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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인관계 학습** | 집단이 사회의 축소판 — 무늬를 확인하고 바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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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단응집력** | 소속되고 받아들여지는 경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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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화(카타르시스)** | 억눌린 감정을 안전하게 내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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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존적 요인** | 유한함과 책임, 고독을 마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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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 학습이 작동하는 방식
얄롬이 열한 요인 가운데 가장 무게를 둔 것이 대인관계 학습이며, 그 바탕에 「집단은 사회의 축소판(social microcosm)」이라는 명제가 있다. 사람은 밖에서 관계를 맺던 방식을 집단 안에서도 그대로 되풀이한다 — 늘 눈치를 보던 사람은 여기서도 눈치를 보고, 늘 앞장서던 사람은 여기서도 앞장서며, 늘 밀려나던 사람은 여기서도 밀려난다. 이것이 개입의 기회가 되는 이유는 셋이다. 첫째, 지금 여기서 일어난다. 밖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무늬가 눈앞에서 재현되므로, 다투지 않고 사실로 다룰 수 있다. 둘째, 피드백이 있다. 개인 상담에서는 실천가 한 사람의 반응만 얻지만, 집단에서는 여러 사람이 「저는 그때 이렇게 느꼈다」를 말해 준다. 자기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아는 통로가 열린다. 셋째, 다르게 해 볼 수 있다. 확인한 무늬를 그 자리에서 바꿔 볼 수 있고, 그 경험이 밖으로 옮겨 간다. 그래서 얄롬은 집단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지금 여기(here and now)로 끌어오는 것을 실천가의 핵심 기술로 보았다 — 밖의 이야기가 길어질 때 「그 일과 비슷한 것이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나요」로 돌리는 것이다.
열한 요인을 점검표로 쓰기
열한 요인은 외우기 위한 목록이 아니라 지금 이 집단을 점검하는 눈금으로 쓸 때 값이 있다. 몇 회기가 지난 집단을 놓고 하나씩 물어 보면 무엇이 비었는지가 드러난다. 「희망이 보이는가」 — 나아진 사례가 집단 안에 있는가, 없다면 먼저 회복한 사람을 초대하거나 이전 참여자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보편성이 확인되었는가」 — 성원들이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했는가, 아직이라면 비슷한 경험을 잇는 물음을 던진다. 「이타심의 자리가 있는가」 — 늘 받기만 하는 성원이 있다면 그가 도울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응집력이 있는가」 — 결석과 지각, 대화의 깊이로 확인한다. 「대인관계 학습이 일어나는가」 — 성원들이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고받는가, 아니면 각자 실천가에게만 말하는가. 이렇게 점검하면 「집단 분위기가 안 좋다」는 막연한 판단이 비어 있는 요인을 채우는 구체적 계획으로 바뀐다. 특히 이타심과 대인관계 학습은 실천가가 말을 줄여야 생기는 자리라, 점검의 결론이 대개 「내가 덜 말한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