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로서의 가족

순환적 인과성과 가족항상성

미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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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적 인과성(circular causality)은 가족 안의 일을 원인과 결과의 직선이 아니라 서로 물고 도는 고리로 보는 관점이다.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아내가 잔소리를 한다」와 「아내가 잔소리를 해서 남편이 늦게 들어온다」가 모두 맞고 모두 부분적이라는 것이다. 시작점을 어디로 잡느냐는 각자의 자리에 따라 달라지며, 이것을 구두점(punctuation)의 차이라 한다. 이 관점이 실천에 주는 것은 셋이다. 첫째, 범인 찾기를 그만두게 한다 — 누구 때문인지 가리는 대신 어떤 고리가 돌고 있는지를 본다. 둘째, 개입의 지점이 여럿이 된다 — 고리 어느 자리든 끊으면 전체가 달라지므로, 가장 바꾸기 쉬운 자리부터 손댈 수 있다. 셋째, IP(지목된 환자)를 다시 본다 —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한 사람은 원인이 아니라 고리의 한 마디이며, 그 증상이 가족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가족항상성(family homeostasis)은 가족이 흔들려도 익숙한 균형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이다. 규칙과 역할, 주고받는 방식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아무리 불편해도 그 상태가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개입이 잘 진행되다가 몇 주 뒤 되돌아가는 일은 이 성질의 작동이며, 실패가 아니라 예측 가능한 국면이다. 항상성을 유지하는 장치가 환류(feedback)다. 변화를 줄여 지금 상태를 지키는 부적 환류와 변화를 키우는 정적 환류가 있는데, 이름과 달리 좋고 나쁨의 뜻이 아니다. 가족 개입은 결국 부적 환류를 뚫고 정적 환류를 만들어 새 균형으로 옮기는 일이며, 그래서 변화가 일으킬 파장까지 미리 다루어야 한다.
가족 안의 일에는 대개 시작점이 없다. 누가 먼저 그랬느냐를 따지면 각자 다른 지점을 시작으로 잡고 끝나지 않는 다툼이 된다. 서로 물고 도는 고리로 보면 다툴 일이 사라지고 대신 어디를 끊을지가 보인다. 그리고 가족은 흔들려도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좋아졌다가 되돌아가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예정된 국면이며, 그것을 알고 있으면 준비할 수 있다.
  1. 순환적 인과성은 가족 안의 일을 직선의 인과가 아니라 서로 물고 도는 고리로 본다.
  2. 같은 상황을 두고 각자 다른 지점을 시작으로 잡는 것을 구두점의 차이라 부른다.
  3. 이 관점은 범인 찾기를 그만두게 하고 어떤 고리가 돌고 있는지를 보게 한다.
  4. 개입의 지점이 여럿이 된다 — 고리 어느 자리든 끊으면 전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5. IP(지목된 환자)는 원인이 아니라 고리의 한 마디이며 증상의 기능을 묻게 된다.
  6. 가족항상성은 흔들려도 다시 익숙한 균형으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가리킨다.
  7. 개입 뒤 몇 주가 지나 되돌아가는 일은 항상성의 작동이며 예측 가능한 국면이다.
  8. 항상성을 유지하는 장치가 환류이며 부적 환류와 정적 환류의 둘로 나뉜다.
  9. 부적 환류는 변화를 줄여 지금 상태를 지키고 정적 환류는 변화를 키워 증폭시킨다.
  10. 가족 개입은 결국 부적 환류를 뚫고 새 균형으로 옮기는 일이며 파장을 미리 다루어야 한다.
  1. 순환적 인과성을 「모두의 책임」으로 바꾸지 않는다. 폭력과 학대에서 이 논리를 쓰면 피해자에게 책임을 나누는 일이 되며, 권력의 비대칭이 있는 관계에는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다.
  2. IP 의 증상을 「연기」로 읽지 않는다. 증상이 가족 안에서 기능을 한다는 것과 일부러 그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3. 부적 환류를 나쁜 환류로 읽지 않는다. 일탈을 줄여 안정을 지키는 작용이며, 정적 환류는 변화를 키우는 작용일 뿐 좋고 나쁨의 뜻이 아니다.
  4. 항상성을 저항으로만 보지 않는다. 균형을 지키려는 힘은 가족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기능이기도 하므로, 꺾기보다 새 균형으로 옮기는 설계를 한다.
  5. 되돌아감을 실패로 처리하지 않는다. 항상성의 정상적인 작동이며, 미리 예고해 두면 가족도 실천가도 덜 흔들린다.

직선적 인과와 순환적 인과

직선적 인과

순환적 인과

두 개념이 실천에서 하는 일
개념무엇을 알려 주는가개입에서의 뜻
**순환적 인과성**시작점을 정할 수 없다범인 찾기를 멈추고 고리를 본다
**구두점의 차이**각자 다른 지점을 시작으로 잡는다서로의 관점을 드러내 다툼을 줄인다
**IP(지목된 환자)**한 사람에게 문제가 몰려 있다증상의 기능을 묻는다
**가족항상성**익숙한 균형으로 돌아가려 한다되돌아감을 예고하고 준비한다
**부적 환류**변화를 줄여 안정을 지킨다무엇이 이 상태를 유지시키는지 찾는다
**정적 환류**변화를 키운다작은 변화를 확대해 새 균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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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적 인과성을 쓰면 안 되는 자리

순환적 인과성은 강력한 관점이지만 적용하면 안 되는 자리가 분명히 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성폭력처럼 권력의 비대칭이 뚜렷한 관계다. 여기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논리를 쓰면 「맞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로 미끄러지고, 그것은 이차 가해이자 안전을 위협하는 판단이 된다. 가족치료 분야가 오랫동안 비판받은 자리이기도 하다. 판별의 기준은 셋이다. 첫째, 힘이 대등한가. 한쪽이 경제·신체·법적 지위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면 순환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둘째, 안전이 확보되어 있는가. 폭력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는 관계의 고리가 아니라 가해 행위 자체가 다룰 대상이며, 개입은 안전 확보와 분리가 먼저다. 셋째, 책임이 분명한가. 가해 행위의 책임은 나눌 수 없으며, 이는 관계의 상호작용과 별개의 문제다. 안전이 확보되고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라야 관계의 고리를 함께 볼 수 있다. 이 구별을 하지 못하면 좋은 이론이 사람을 다치게 한다.

항상성을 이기는 개입의 설계

가족 개입이 잘 진행되다가 되돌아가는 것은 흔한 일이고, 그 자리에서 실천가가 흔히 하는 실수가 「가족이 협조하지 않는다」로 결론짓는 것이다. 항상성을 알고 있으면 다른 설계가 나온다. 첫째, 미리 예고한다. 「좋아지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때가 옵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흔한 일입니다」라고 미리 말해 두면, 그 순간이 왔을 때 가족이 포기하지 않는다. 이 예고 자체가 개입이다. 둘째, 파장을 미리 다룬다. 한 사람이 달라지면 다른 사람의 자리가 바뀐다 — 아이가 독립하면 어머니의 역할이 비고, 아버지가 술을 끊으면 그동안 집을 지탱하던 사람의 자리가 사라진다. 이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함께 정해 두지 않으면 체계는 옛 균형으로 돌아간다. 셋째, 새 규칙을 세운다. 변화를 유지하려면 그것을 떠받칠 새 규칙과 일과가 필요하다. 넷째, 바깥 자원을 넣는다. 닫힌 체계는 스스로 변하기 어려우므로, 새 정보와 관계가 들어올 통로를 만든다 — 자조모임, 부모교육, 이웃 관계가 그런 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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