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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적 인과성을 쓰면 안 되는 자리
순환적 인과성은 강력한 관점이지만 적용하면 안 되는 자리가 분명히 있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성폭력처럼 권력의 비대칭이 뚜렷한 관계다. 여기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논리를 쓰면 「맞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로 미끄러지고, 그것은 이차 가해이자 안전을 위협하는 판단이 된다. 가족치료 분야가 오랫동안 비판받은 자리이기도 하다. 판별의 기준은 셋이다. 첫째, 힘이 대등한가. 한쪽이 경제·신체·법적 지위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면 순환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둘째, 안전이 확보되어 있는가. 폭력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는 관계의 고리가 아니라 가해 행위 자체가 다룰 대상이며, 개입은 안전 확보와 분리가 먼저다. 셋째, 책임이 분명한가. 가해 행위의 책임은 나눌 수 없으며, 이는 관계의 상호작용과 별개의 문제다. 안전이 확보되고 힘의 균형이 어느 정도 회복된 뒤에라야 관계의 고리를 함께 볼 수 있다. 이 구별을 하지 못하면 좋은 이론이 사람을 다치게 한다.
항상성을 이기는 개입의 설계
가족 개입이 잘 진행되다가 되돌아가는 것은 흔한 일이고, 그 자리에서 실천가가 흔히 하는 실수가 「가족이 협조하지 않는다」로 결론짓는 것이다. 항상성을 알고 있으면 다른 설계가 나온다. 첫째, 미리 예고한다. 「좋아지다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때가 옵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흔한 일입니다」라고 미리 말해 두면, 그 순간이 왔을 때 가족이 포기하지 않는다. 이 예고 자체가 개입이다. 둘째, 파장을 미리 다룬다. 한 사람이 달라지면 다른 사람의 자리가 바뀐다 — 아이가 독립하면 어머니의 역할이 비고, 아버지가 술을 끊으면 그동안 집을 지탱하던 사람의 자리가 사라진다. 이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함께 정해 두지 않으면 체계는 옛 균형으로 돌아간다. 셋째, 새 규칙을 세운다. 변화를 유지하려면 그것을 떠받칠 새 규칙과 일과가 필요하다. 넷째, 바깥 자원을 넣는다. 닫힌 체계는 스스로 변하기 어려우므로, 새 정보와 관계가 들어올 통로를 만든다 — 자조모임, 부모교육, 이웃 관계가 그런 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