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의 형태

증서(바우처)와 기회·권력

미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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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과 현물 사이에, 그리고 그 밖에 여러 급여 형태가 있다. 증서(voucher)는 용도를 정한 구매권이다. 정해진 서비스나 물품에만 쓸 수 있되 그 안에서 공급자를 고를 수 있다. 현금의 선택권과 현물의 목표효율성을 함께 취하려는 설계이며, 소비자 주권을 살리면서 오남용을 막는다는 것이 논거다. 공급자끼리 경쟁하게 되어 서비스의 질이 오른다는 기대도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노인돌봄, 장애인활동지원,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등)가 대표적이다. 다만 조건이 있다. 고를 만큼 공급자가 있어야 하고, 이용자가 질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정보가 공개되어야 한다. 셋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선택권은 이름뿐이 되고, 단가가 낮으면 경쟁이 질이 아니라 인건비 깎기로 나타난다. 기회(opportunity)는 재화가 아니라 진입의 통로를 주는 급여다. 장애인 의무고용, 여성 할당제, 대학의 사회적 배려 전형, 국가유공자 자녀의 가산점이 그 예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 구조적 불평등을 겨눈다는 강점이 있으나, 기회를 주어도 그것을 살릴 능력이 없으면 실효가 없고 역차별 논란이 따른다. 권력(power)은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주는 급여다. 재화의 이전이 아니라 자원 배분의 결정 과정에 대한 영향력을 나눈다.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위원회에 거주자 대표와 보호자 대표가 들어가는 것(사회복지사업법 제36조),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서비스 이용자 쪽 대표가 참여하는 것, 정신건강복지법 제2조제9항이 정신질환자의 정책 결정과정 참여 권리를 명시한 것이 그 예다. 가장 근본적인 급여이지만 효과를 측정하기 어렵고 실제 영향력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서비스(service)는 상담·치료·재활·돌봄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제공하는 활동이며, 현물급여의 한 갈래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티트머스가 사회서비스를 사회보장의 한 축으로 끌어올린 뒤 그 비중이 커졌다. 형태의 배열을 선택의 자유 순으로 놓으면 현금 > 증서 > 현물이고, 목표효율성 순으로 놓으면 그 반대다. 기회와 권력은 이 축 밖에서 구조 자체를 바꾸는 급여로 따로 선다.
증서를 붙잡는 한 문장은 「용도는 정하되 가게는 고르게 한다」이다. 현금은 용도도 가게도 자유이고, 현물은 둘 다 정해져 있으며, 증서는 그 중간이다. 기회와 권력은 성격이 아주 다르다 — 앞의 셋이 무엇을 받는가의 문제라면 이 둘은 어떤 자리에 서는가의 문제이며, 그래서 재화의 양으로 잴 수 없다.
  1. 증서(바우처)는 용도를 정한 구매권으로 그 안에서 공급자를 고를 수 있다.
  2. 증서는 현금의 선택권과 현물의 목표효율성을 함께 취하려고 만든 중간 형태의 설계다.
  3. 증서가 작동하려면 공급자의 수·이용자의 판단력·정보의 공개 셋이 갖추어져야 한다.
  4.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노인돌봄·장애인활동지원 등)가 증서의 대표적 사례다.
  5. 기회는 재화가 아니라 진입의 통로를 주는 급여로 의무고용·할당제가 그 예다.
  6. 기회는 비용이 적으면서 구조적 불평등을 겨누나 역차별 논란이 따른다.
  7. 권력은 재화가 아니라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한을 나누는 가장 근본적인 급여 형태다.
  8. 권력의 예 — 시설 운영위원회의 거주자·보호자 대표, 협의체 참여, 정책 결정과정 참여권.
  9. 선택의 자유는 현금 > 증서 > 현물 순으로 작아지고, 목표효율성은 정확히 그 반대 순서다.
  1. 증서를 「현금과 같다」로 적으면 틀린다. 용도가 정해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2. 증서를 「공급자를 고를 수 없다」로 적어도 틀린다. 고를 수 있다는 것이 설계의 핵심이다.
  3. 기회와 권력을 맞바꾼 선지를 조심할 것 — 기회는 진입, 권력은 결정 참여다.
  4. 권력을 급여 형태에서 빼는 선지가 나온다. 길버트와 테렐의 목록에 들어 있다.
  5. 선택의 자유 순서를 뒤집은 선지가 있다. 현금이 가장 자유롭고 현물이 가장 제한적이다.
기회 (opportunity)

들어갈 문을 열어 준다. 장애인 의무고용, 할당제, 사회적 배려 전형이 그 예다. 재화를 이전하지 않으므로 비용이 적고, 구조적 차별을 겨눈다. 다만 문만 열고 능력을 길러 주지 않으면 실효가 없다.

권력 (power)

정하는 자리에 앉힌다. 무엇을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하는 과정에 이용자를 참여시킨다. 가장 근본적이지만 효과를 재기 어렵고, 형식적 참여에 그치면 이름뿐인 급여가 된다.

급여의 여섯 형태
형태무엇을 주는가선택의 자유보기
현금돈가장 크다생계급여, 실업급여, 아동수당
증서용도를 정한 구매권중간 — 공급자는 고른다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현물물건작다무상급식, 보조기기
서비스사람이 제공하는 활동작다상담·치료·재활·돌봄
기회진입의 통로해당 없음의무고용, 할당제, 가산점
권력결정에 참여할 권한해당 없음운영위원회 참여, 정책 참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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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처가 약속한 것과 실제로 일어난 일

우리나라는 2007년부터 사회서비스에 전자바우처를 도입했다. 설계의 논거는 명확했다 — 이용자가 공급자를 고르면 경쟁이 생기고, 경쟁이 질을 올린다. 실제로 얻은 것이 있다. 공급자가 크게 늘어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고, 이용자가 기관을 바꿀 수 있게 되면서 일방적 관계가 조금 완화되었다. 전자 결제로 부정 사용의 확인도 쉬워졌다. 예상과 달랐던 것도 있다. 첫째, 경쟁이 질이 아니라 가격으로 갔다. 서비스 단가가 정해져 있고 낮으면, 공급자가 경쟁할 수 있는 여지는 인건비뿐이다. 그 결과 종사자의 임금과 고용 안정이 나빠졌고, 이직이 잦아져 오히려 서비스의 연속성이 떨어졌다. 둘째, 선택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농촌에는 공급자가 하나뿐이고, 이용자가 서비스의 질을 판단할 정보도 없다. 돌봄은 한번 관계를 맺으면 바꾸기 어려운 성질이라 「고를 수 있다」는 것이 이론에 그쳤다. 셋째, 크림 스키밍이 나타났다. 손이 덜 가는 이용자를 선호하고 중증을 기피하는 경향이다. 대응은 단가의 현실화, 종사자 처우 개선의 의무화, 기관 평가와 결과 공개, 중증에 대한 가산이다. 곧 바우처는 시장을 만들었지만 그 시장을 규제하는 설계가 함께 있어야 뜻을 갖는다는 것이 지난 십수 년의 교훈이다.

권력이 급여 목록에 들어 있는 뜻

길버트와 테렐이 권력을 급여의 한 형태로 넣은 것은 사회복지의 성격에 대한 주장이다. 재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누가 정하는가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거는 이렇다. 급여의 종류와 수준을 정하는 자리에 이용자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공급자의 편의에 맞춰 설계된다. 시설의 기상 시간이 이용자가 아니라 근무 교대에 맞춰 정해지는 것, 서비스 시간이 이용자의 하루가 아니라 기관의 운영 시간에 맞춰지는 것이 그 예다. 우리 법이 이 급여를 제도화한 자리가 여럿 있다. 사회복지사업법 제36조제2항은 시설 운영위원회 위원에 시설 거주자 대표와 거주자의 보호자 대표를 각각 명시하고, 위원의 임명·위촉을 시설의 장이 아니라 시장·군수·구청장이 하게 했다. 사회보장급여법 제41조제3항은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에 비영리민간단체 추천자를 넣는다. 정신건강복지법 제2조제9항은 「정신질환자는 자신과 관련된 정책의 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아예 이념으로 선언한다. 최근에는 당사자를 서비스의 제공자로 세우는 데까지 나아갔다. 장애인복지법의 장애인 자립생활지원시설의 동료상담(제58조제1항제2호의2)과 정신건강복지법의 동료지원인(제3조제8호)이 그것이다. 권력이 참여를 넘어 역할의 전환으로 이어진 자리이며,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의 경계를 흐리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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