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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트머스의 「보편주의 안의 선별」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양자택일로 놓는 것은 티트머스 자신이 반대한 도식이다. 그는 『복지에의 헌신』(1968)에서 「보편주의라는 기반 위에서 어떻게 선별적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를 물었다.
논리는 이렇다. 보편적 제도만으로는 특별히 어려운 처지의 사람에게 충분하지 않다. 모두에게 같은 것을 주면, 더 많이 필요한 사람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렇다고 선별적 제도만 두면 낙인과 비수급이 생긴다.
답은 보편적 틀 안에서 추가로 주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제도의 이용자가 되게 하되, 그 안에서 필요에 따라 더 두텁게 지원한다. 이러면 「어느 제도를 이용하는가」로 사람이 갈리지 않으므로 낙인이 생기지 않는다.
우리 제도에서 이 구조가 보이는 자리가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이 같은 제도에 속하되, 소득에 따라 보험료가 다르고 본인부담상한액이 소득수준에 따라 달리 정해진다(국민건강보험법 제44조제3항). 같은 문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차등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의료급여가 별도 제도로 갈라져 있는 것과 대비된다.
아동수당에 대한 논쟁도 이 틀로 읽힌다. 소득 상위를 잘라 낼 것인가, 모두에게 주고 세금으로 조정할 것인가의 선택이며, 뒤가 티트머스의 방식에 가깝다.
낙인이 비용 효과성까지 떨어뜨리는 계산
두 효과성이 반대 방향이라는 도식이 깨지는 가장 뚜렷한 자리가 낙인과 비수급이다.
선별주의의 비용 효과성은 「자격 없는 사람에게 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런데 목표효율성은 두 방향의 오류로 재야 한다. 하나는 자격 없는 사람이 받는 것(제1종 오류)이고, 다른 하나는 자격 있는 사람이 못 받는 것(제2종 오류)이다. 선별주의는 앞을 줄이지만 뒤를 크게 늘린다.
뒤의 오류를 셈에 넣으면 계산이 달라진다. 급여를 받지 못한 사람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곳에서 비용으로 나타난다 — 건강이 나빠져 의료비가 들고, 아이의 교육이 끊겨 다음 세대의 빈곤이 이어지며, 극단적인 경우 사회적 참사로 드러난다. 사회보장급여법의 발굴 규정 전체가 이 비용을 줄이려는 장치라는 점이 그 방증이다.
또 하나, 행정비용의 비교도 단순하지 않다. 자산조사에 드는 인건비와 전산 비용, 이의신청과 소송에 드는 비용을 합하면, 급여액이 크지 않은 제도에서는 조사 비용이 절약분을 넘길 수 있다.
곧 「선별주의가 효율적」이라는 명제는 어디까지를 비용으로 셈하는가에 달렸다. 급여 지출만 보면 참이고, 미수급의 사회적 비용과 행정비용을 넣으면 뒤집힐 수 있다. 시험에서는 두 효과성의 짝을 묻지만, 그 짝이 성립하는 조건을 아는 것이 이 장의 실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