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 아젠다 (공중 아젠다)사회 구성원이 관심을 갖는 문제들의 목록이다. 언론이 다루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단계이며, 정부가 다루기로 한 것은 아니다. 여기 오르는 것만으로는 정책이 되지 않는다.
VS제도 아젠다 (정부 아젠다)정부가 실제로 검토하기로 한 것들의 목록이다. 체제 아젠다의 일부만 여기로 올라오며, 무엇이 올라오고 무엇이 막히는가에 무의사결정의 권력이 작동한다.
문제의 형성 — 어떤 상태가 사회문제로 인식된다→아젠다 형성 — 정부의 논의 대상이 된다(가장 정치적인 관문)→대안의 형성 — 여러 방안을 만들고 견준다→정책의 결정 — 법률·예산·행정계획으로 확정한다→정책의 집행 — 실제로 실행한다(내용이 바뀌기도 한다)→정책의 평가 — 결과를 재고 다음 정책에 되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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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사결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권력
바흐라흐와 바라츠는 「권력의 두 얼굴」(1962)에서 기존의 권력 연구를 비판했다. 그때까지의 연구는 누가 결정에서 이기는가를 보았는데, 그것은 권력의 한 얼굴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얼굴은 의제가 되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어떤 문제가 아예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하면 다툼도 없고, 다툼이 없으니 갈등도 관찰되지 않는다. 겉으로는 합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 제기 자체가 봉쇄된 것이다. 이것이 무의사결정이다.
작동 방식은 여럿이다. 폭력이나 제재로 문제 제기를 막는 것,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지치게 하는 것, 「그것은 여기서 다룰 사안이 아니다」라며 관할을 부인하는 것, 그리고 가장 미묘하게는 그것이 문제라는 인식 자체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 영역에도 이 구조가 있다. 오랫동안 가정폭력은 「집안일」이라 공적 문제가 아니었고, 돌봄노동은 「사랑」이라 노동으로 셈해지지 않았으며, 장애인의 이동권은 「예산이 없다」는 말로 논의 밖에 놓였다. 이 문제들이 아젠다에 오른 것은 당사자 운동이 오래 밀어붙인 결과이며, 그 과정 자체가 무의사결정의 벽을 넘는 일이었다.
곧 아젠다 형성은 기술적 단계가 아니라 누구의 고통이 문제로 인정받는가를 정하는 정치적 관문이다.
정책의 창이 열리는 순간
킹던의 모형이 널리 쓰이는 것은 왜 어떤 정책이 하필 그때 만들어졌는가를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 흐름이 독립적으로 흐른다고 보았다. 문제의 흐름은 어떤 상태가 문제로 인식되는 과정이고, 정책(대안)의 흐름은 전문가와 관료가 만들어 둔 해법들이 떠다니는 과정이며, 정치의 흐름은 여론·선거·정권 교체 같은 정치적 상황이다.
평소에는 셋이 따로 논다. 문제가 있어도 해법이 없거나, 해법이 있어도 정치적 계기가 없다. 그러다 어떤 사건이 셋을 한꺼번에 묶는 순간이 온다. 그때 정책의 창이 열리고, 준비되어 있던 대안이 문제에 붙어 정책이 된다.
중요한 함의는 대안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이 열렸을 때 꺼낼 것이 없으면 기회는 지나간다. 그래서 킹던은 정책 선도자(policy entrepreneur)의 역할을 강조했다 — 평소에 대안을 다듬어 두었다가 창이 열리는 순간 밀어 넣는 사람이다.
우리 사회복지 입법에도 이 패턴이 자주 보인다. 큰 사건이 문제의 흐름을 만들고, 이미 논의되던 법안이 그 계기에 통과되는 방식이다. 사회복지사업법의 인권 관련 조항들이 시설 인권침해 사건 뒤에 신설된 것, 아동학대 대응이 지자체 전담공무원 체제로 바뀐 것이 그런 예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