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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상품화가 노동시장의 힘이 되는 이유
탈상품화는 겉으로는 복지의 관대함을 재는 지표처럼 보이지만, 에스핑-안데르센이 이 개념을 고른 이유는 노동시장의 권력관계 때문이다.
노동자가 급여 없이 살 수 없다면 어떤 조건의 일자리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협상력이 없다. 반대로 실업급여가 넉넉하고 오래 나오면 나쁜 일자리를 거부할 수 있고, 그 거부 가능성 자체가 임금과 노동조건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탈상품화가 높은 나라는 저임금 일자리가 적다.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그런 일자리가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반대로 탈상품화가 낮은 나라에서는 아주 낮은 임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미국과 스웨덴의 노동시장 구조 차이가 이 논리로 설명된다.
이 관점은 우리 제도를 읽는 데도 쓰인다. 고용보험 구직급여의 소정급여일수가 짧고 수급 요건(피보험 단위기간 180일)이 있으며 자발적 이직이 제한되는 구조는 탈상품화를 낮추는 방향이다. 반면 국민연금·건강보험의 보편적 적용은 높이는 방향이다. 한 나라 안에서도 제도마다 방향이 다를 수 있고, 그래서 유형론은 평균적 경향을 말할 뿐이다.
에스핑-안데르센은 1999년 저작에서 탈가족화(de-familialization)라는 세 번째 축을 더했다. 가족, 특히 여성에게 얼마나 덜 의존하게 하는가를 재는 것이며, 젠더 비판을 받아들인 결과다.
우리나라는 어느 유형인가
한국을 세 유형 가운데 어디에 넣을지는 오래 다투어져 왔고,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
자유주의로 보는 근거 — 사회지출 비중이 OECD 최하위권이고, 공공부조의 자산조사가 엄격하며, 민간 보험과 사교육의 비중이 크다. 시장이 메우는 부분이 크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이다.
조합주의로 보는 근거 — 사회보험이 중심이고 직역연금이 따로 있으며, 가족의 부양 책임이 법에 명시되어 있다(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부양의무자 기준, 노인복지법의 부양의무자 정의). 보충성 원칙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에서 조합주의적이다.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견해 — 홀리데이(I. Holliday)의 생산주의 복지체제(productivist welfare regime)론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성장을 위해 복지를 종속시킨 별도의 유형이라고 본다. 교육과 보건에는 투자하되 소득보장은 미루고, 복지가 경제정책의 하위에 놓인다는 것이다.
시험에서는 대개 세 유형의 특징과 나라 짝짓기를 묻고 한국의 분류는 직접 묻지 않는다. 다만 「한국은 조합주의적 요소와 자유주의적 요소를 함께 가진다」 정도의 서술은 자주 나오며, 이는 대체로 옳은 진술로 다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