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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가 실제로 하는 일
제3의 길의 표어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것이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이다. 문장만 보면 온당해 보이지만, 정책으로 옮기면 급여에 조건을 다는 일이 된다.
영국의 뉴딜(New Deal) 프로그램이 그 예다. 청년 실업자에게 보조금 지원 취업, 교육·훈련, 자원봉사, 환경 사업의 네 선택지를 주되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 선택지는 없었다. 거부하면 급여가 줄거나 끊긴다.
지지하는 쪽은 이것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고 본다. 급여만 주고 방치하면 장기 실업으로 굳어지므로, 훈련과 취업 지원을 함께 주는 것이 당사자에게도 낫다는 것이다.
비판하는 쪽은 책임이 일방적이라고 지적한다. 개인에게는 일할 책임을 지우면서 국가에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인 사람에게 「일하려는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원인과 대책이 어긋난다.
우리 제도에도 같은 구조가 있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9조제5항의 조건부수급, 제15조의 자활급여, 고용보험법 제40조제1항제4호의 「재취업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 그것이다. 다만 우리 법은 조건을 자활지원계획을 고려하여 제시하게 하고 불이익의 범위를 본인의 생계급여로 한정해, 일방성을 줄이는 장치를 함께 두었다.
사회투자가 놓치는 사람들
사회투자국가의 논리는 명쾌하다 — 지금 아동에게 투자하면 그 아이가 자라 세금을 내는 사람이 되므로, 복지 지출이 비용이 아니라 투자가 된다.
이 논리는 강력하지만 투자의 언어로 복지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위험을 안고 있다. 투자는 수익을 전제하므로, 수익이 나지 않는 대상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중증장애인, 회복 가망이 없는 환자, 이미 노년에 접어든 사람에 대한 지출은 이 논리 안에서 근거를 찾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투자 논의에는 늘 「투자로 정당화되지 않는 복지는 어떻게 하는가」라는 물음이 따라붙는다. 답은 결국 사회투자 밖에 있다 — 사람은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것이며, 헌법 제10조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제34조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그 근거다.
또 하나의 한계는 시차다. 아동에 대한 투자의 효과는 20년 뒤에 나타나지만, 지금 굶는 사람은 오늘 먹어야 한다. 투자를 늘리기 위해 현금급여를 줄이면 현재의 빈곤이 깊어진다.
결국 사회투자는 기존 복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하는 것일 때 뜻이 있다. 우리나라가 아동수당과 무상보육을 넓히면서 동시에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을 유지·확대해 온 것도 그 균형을 잡으려는 흐름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