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버트법·스핀햄랜드법 (완화)원외구제를 인정하고 임금을 보충했다. 작업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구제받을 수 있게 하여 인도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가는 구빈세의 폭증과 임금 하락이었다.
VS신구빈법 (강경)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의 원외구제를 폐지하고, 구제 수준을 최하층 노동자보다 낮게 두었으며, 처우를 전국적으로 통일했다.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관점이 가장 강하게 관철되었다.
1601 엘리자베스 구빈법 — 국가 책임 인정, 노동능력으로 삼분→1662 정주법 — 빈민의 이동 제한, 원 교구로 강제 송환→1782 길버트법 — 원외구제 인정, 교구연합, 일자리 알선→1795 스핀햄랜드법 — 임금보조, 빵값과 가족 수 기준→1834 신구빈법 — 열등처우·작업장 활용·전국 균일처우로 되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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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햄랜드가 남긴 교훈과 그 재평가
스핀햄랜드 제도는 오랫동안 「선의가 낳은 재앙」의 표본으로 인용되어 왔다. 임금을 보충해 주니 고용주가 임금을 낮추었고, 결국 구빈세로 고용주를 보조한 꼴이 되었으며, 노동자는 임금이 아무리 낮아도 교구가 메워 주니 협상할 이유를 잃었다는 것이다. 폴라니(K. Polanyi)가 『거대한 전환』에서 이 제도를 시장경제 형성기의 결정적 사건으로 다룬 것도 이 맥락이다.
다만 이 평가는 1834년 왕립위원회 보고서에 크게 기대고 있고, 그 보고서 자체가 신구빈법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을 가졌다는 지적이 있다. 뒤의 연구들은 임금 하락의 원인이 스핀햄랜드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곡물가 폭락과 농업 구조 변화에 있었다고 본다.
오늘의 관점에서 스핀햄랜드가 다시 읽히는 것은 근로장려세제(EITC)와의 유사성 때문이다. 둘 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세금이나 구빈세로 보충한다. 차이는 설계에 있다 — 근로장려세제는 일할수록 급여가 늘어나는 구간을 두어 근로 유인을 만들고, 고용주가 아니라 개인의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삼는다. 스핀햄랜드가 「부족분을 채워 준다」는 구조여서 한계세율이 100%였던 것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곧 같은 아이디어가 설계에 따라 실패도 성공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역사의 교훈이며, 앞 장의 「빈곤의 함정」 논의와 그대로 이어진다.
열등처우 원칙이 오늘 되살아나는 자리
열등처우의 원칙은 「구제받는 사람의 처지가 스스로 벌어 사는 최하층보다 나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834년의 논리이지만 지금도 형태를 바꿔 나타난다.
가장 흔한 것이 「급여가 최저임금보다 많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일하는 사람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더 받으면 누가 일하겠느냐는 것이며, 논리 구조가 열등처우 원칙과 같다.
반론은 두 갈래다. 첫째, 비교 대상이 잘못되었다. 급여는 가구 단위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최저임금은 개인의 시간당 대가이므로 층위가 다르다. 넷이 사는 가구의 생계급여가 1인 최저임금보다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둘째, 문제가 급여의 높이가 아니라 임금의 낮음일 수 있다. 최저임금이 생활에 못 미치는 것을 급여를 깎아 해결하려는 것은 방향이 반대다.
우리 제도가 택한 길은 열등처우가 아니라 유인 설계다. 소득이 늘 때 급여가 그만큼 줄지 않게 하고(소득공제), 일할수록 붙는 급여를 따로 두며(근로장려세제), 자활에 성공해도 요건이 깨지지 않게 한다(자활기업 구성원 산정, 자산형성지원 자산의 소득환산 제외). 급여를 낮춰 일하게 만드는 대신, 일하는 편이 유리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1834년과 오늘이 갈리는 자리가 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