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빈법

엘리자베스 구빈법과 정주법

미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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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구빈법(1601)은 흩어져 있던 구빈 관련 법령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국가가 빈민 구제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법이라는 점에서 사회복지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교구(parish)를 행정 단위로 삼고 구빈세(poor rate)를 걷었으며, 구빈감독관(overseer of the poor)을 두어 집행하게 했다. 이 법의 핵심은 빈민을 셋으로 나눈 것이다.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able-bodied poor)에게는 작업장(workhouse)에서 일을 시키고 거부하면 처벌했다. 노동능력이 없는 빈민(impotent poor) — 노인·장애인·질병자·아동을 동반한 과부 — 은 구빈원(almshouse)에 수용하거나 원외구제를 주었다. 요보호 아동(dependent children)은 도제(apprentice)로 보내 기술을 익히게 했다. 남아는 24세까지, 여아는 21세 또는 결혼할 때까지가 원칙이었다. 친족부양의 원칙도 이 법에 들어 있다. 부모와 조부모, 자녀는 서로 부양할 책임이 있고, 국가의 구제는 그 책임이 다한 뒤에 나선다. 오늘의 보충성 원칙과 부양의무자 기준의 뿌리가 여기다. 정주법(1662, Settlement Act)은 빈민의 이동을 막은 법이다. 교구가 구빈세를 걷어 자기 교구의 빈민을 돌보는 구조에서는, 구제가 후한 교구로 빈민이 몰리는 일이 생긴다. 그래서 새로 들어온 사람이 빈민이 될 우려가 있으면 원래 교구로 강제 송환할 수 있게 했다. 빈민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한 법이며, 노동력의 이동을 막아 산업 발전을 저해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에서 이 법을 비판했다. 두 법을 함께 보면 구빈의 책임을 국가가 지되 그 단위가 교구였다는 것이 이 시대의 성격이다. 책임의 인정과 이동의 제한이 한 몸으로 붙어 있었고, 이 구조는 신구빈법(1834)에서 다시 정리된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을 「최초의 복지법」으로만 외우면 성격을 놓친다. 이 법의 실제 원리는 노동능력의 유무로 사람을 가르는 것이다. 일할 수 있으면 일을 시키고 못 하면 수용한다. 이 이분법이 그 뒤 400년의 공공부조를 지배했고, 오늘의 근로연계복지와 조건부수급까지 이어진다. 정주법은 그 이분법을 지역 단위로 가둔 장치다.
  1. 1601년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국가가 빈민 구제의 책임을 처음 인정한 법으로 꼽힌다.
  2. 행정 단위는 교구, 재원은 구빈세, 집행은 구빈감독관이었다 — 국가가 아니라 지역이 단위였다.
  3. 빈민을 노동능력 있는 빈민·노동능력 없는 빈민·요보호 아동 셋으로 갈랐다.
  4.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은 작업장에서 일을 시키고 거부하면 처벌했다 — 구제가 아니라 강제노동이었다.
  5. 노동능력이 없는 빈민(노인·장애인·질병자 등)은 구빈원 수용 또는 원외구제를 받았다.
  6. 요보호 아동은 도제로 보내 기술을 익히게 했고, 남아는 24세·여아는 21세가 원칙이었다.
  7. 친족부양의 원칙이 들어 있어 오늘의 보충성·부양의무자 기준의 뿌리가 된다.
  8. 정주법(1662)은 빈민이 될 우려가 있는 자를 원래 교구로 강제 송환할 수 있게 했다.
  9. 정주법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고 노동력 이동을 막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1. 빈민의 분류를 둘로 적은 선지가 나온다. 노동능력 유무 + 요보호 아동의 셋이다.
  2.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빈민의 권리를 인정했다」로 적으면 틀린다.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지 권리가 아니다.
  3. 정주법을 「빈민의 이동을 자유롭게 했다」로 뒤집은 선지를 조심할 것. 이동을 제한했다.
  4. 작업장과 구빈원을 맞바꾸지 말 것 — 작업장은 노동능력 있는 빈민, 구빈원은 없는 빈민이다.
  5. 정주법의 연도를 구빈법과 섞지 말 것 — 구빈법 1601년, 정주법 1662년이다.
자격 있는 빈민 (deserving poor)

노동능력이 없어 가난한 사람 — 노인·장애인·질병자·아동을 동반한 과부. 가난이 불운의 결과이므로 구제할 만하다고 보아 구빈원 수용이나 원외구제를 주었다.

자격 없는 빈민 (undeserving poor)

노동능력이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 가난이 게으름의 결과라고 보아 구제 대신 작업장에서의 강제노동을 시키고 거부하면 처벌했다. 이 이분법이 그 뒤 400년을 지배한다.

1601년 구빈법의 세 갈래
갈래누구어떻게
노동능력 있는 빈민일할 수 있는 성인작업장에서 노동 — 거부하면 처벌
노동능력 없는 빈민노인·장애인·질병자·아동 동반 과부구빈원 수용 또는 원외구제
요보호 아동보호자 없는 아동도제로 보내 기술 습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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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능력 이분법이 400년을 갔다

1601년 구빈법이 세운 「노동능력이 있는가」라는 물음은 그 뒤 공공부조의 골격이 되었다. 논리는 단순하다. 일할 수 있는데 가난한 것은 본인의 게으름 탓이므로 구제할 이유가 없거나 노동을 조건으로만 구제한다. 일할 수 없어 가난한 것은 불운 탓이므로 구제한다. 도덕적 판단이 급여의 자격을 정하는 구조이며, 이것이 「자격 있는 빈민(deserving poor)」과 「자격 없는 빈민(undeserving poor)」의 구분이다. 이 구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구빈법(1834)의 열등처우 원칙과 작업장 활용 원칙이 그 강화판이고, 오늘의 근로연계복지도 형태를 바꾼 같은 논리다. 우리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9조제5항이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자활사업 참가를 조건으로 걸고, 제30조제2항이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본인의 생계급여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게 한 것이 그 자리다. 다만 오늘의 조건부수급은 400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 첫째, 불이익의 범위가 본인의 생계급여로 한정되어 가족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둘째, 조건이 자활지원계획을 고려하여 제시되어야 하므로 아무 일이나 시킬 수 없다. 셋째, 「이행할 때까지」라는 시한이 붙어 영구 배제가 아니다. 같은 논리가 이어지되 그 안에 인권의 제약이 겹겹이 붙은 셈이며, 이 차이를 보는 것이 역사를 배우는 값이다.

정주법이 드러낸 지방 책임의 한계

정주법이 생긴 까닭은 구빈의 단위가 교구였기 때문이다. 교구가 자기 구빈세로 자기 빈민을 돌보는 구조에서는 다른 교구의 빈민이 들어오는 것이 곧 부담의 증가다. 그러니 막을 유인이 생긴다. 이 어려움은 재정 책임을 지방에 두는 모든 복지제도에서 되풀이된다. 급여가 후한 지역으로 사람이 옮겨 오면 그 지역의 부담이 커지고, 그러면 지역은 급여를 낮추려 한다. 이른바 복지 자석(welfare magnet) 효과와 바닥으로의 경주(race to the bottom)다. 해법은 두 갈래다. 하나는 재정 책임을 중앙으로 올리는 것이다. 1834년 신구빈법이 전국적 기준을 세운 것, 20세기에 사회보험이 국가 단위로 만들어진 것이 이 방향이다. 사회보장기본법 제25조제5항이 사회보험은 국가의 책임으로 시행한다고 정한 것도 같은 논리다. 다른 하나는 지방이 하되 중앙이 재정을 보전하는 것이다. 우리 공공부조가 국고보조 방식으로 굴러가고, 의료급여기금을 시·도에 두면서도 국고보조금을 주요 재원으로 삼는 것(의료급여법 제25조)이 그 형태다. 정주법은 400년 전의 법이지만 그것이 드러낸 문제는 지금도 정부 간 재정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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