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상태 — 사회의 규칙을 정하려 모인다→무지의 베일 — 자신의 지위·재능·성별·계층을 모른다→최악의 처지에 놓일 수 있으므로 가장 나쁜 결과를 가장 낫게(maximin) 고른다→제1원칙 평등한 자유 — 언제나 우선한다→제2원칙 (나) 공정한 기회균등 — 차등의 원칙보다 앞선다→제2원칙 (가) 차등의 원칙 — 최하위층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불평등이 정당하다
네 정의관이 보는 곳| 정의관 | 기준 | 재분배에 대한 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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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스 | 가장 불리한 처지의 사람 | 조건부로 정당 — 최하위층에 이익이 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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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직 | 취득과 이전의 과정 | 부당 — 소유권의 침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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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리주의 | 효용의 총합 | 총합이 커지면 정당 — 소수의 희생도 가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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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 | 역량(자원을 삶으로 바꾸는 능력) | 자원만으로 부족 — 역량의 평등을 겨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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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베일이 하는 일
무지의 베일은 이상한 장치처럼 보이지만, 하는 일은 분명하다 — 이해관계를 제거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분배의 규칙을 정하려 하면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규칙을 고른다. 부자는 낮은 세율을, 가난한 사람은 두터운 급여를 주장하고, 그 주장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처지의 문제가 된다. 무지의 베일은 이 처지를 지워 버린다. 자신이 부자가 될지 가난한 사람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고른 규칙이라면, 그것은 누구의 이익도 편들지 않은 규칙이다.
이 상태에서 왜 maximin(최악을 최선으로)을 고르게 되는가. 롤스의 논거는 위험 회피다. 사회의 규칙은 한 번 정해지면 평생을 좌우하고 되돌릴 수 없다. 그런 선택에서 사람은 기대값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운이 좋으면 큰 부자, 나쁘면 굶어 죽는 사회」와 「크게 부자는 못 되지만 아무도 굶지 않는 사회」 가운데 후자를 고른다는 것이다.
비판도 있다. 사람이 정말 그렇게까지 위험을 회피하는지, 기대효용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하지 않겠는가 하는 반론(하사니)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이 사고실험이 널리 쓰이는 것은, 분배 원칙을 논할 때 자기 처지를 괄호에 넣어 보라는 요구 자체가 유용하기 때문이다.
차등의 원칙이 복지정책에 주는 잣대
차등의 원칙은 사회복지정책에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준다 — 어떤 정책이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몫을 늘리는가.
이 잣대는 직관과 어긋나는 결론을 낳기도 한다. 예컨대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는 것이 최하위층에게 이롭다고 단정할 수 없다. 고용이 줄어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생기면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의 처지는 오히려 나빠질 수 있고, 그렇다면 차등의 원칙은 그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 판단이 실증에 열려 있다는 뜻이다.
또 이 원칙은 평등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모두를 똑같이 만드는 것이 최하위층에게 이롭지 않다면 평등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롤스는 평등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양쪽에서 비판받는다 — 앞에서는 불평등을 너무 쉽게 허용한다고, 뒤에서는 최하위층에게 거부권을 준다고.
우리 제도에서 이 원칙과 가장 가까운 자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의 보충성 원칙이 아니라 급여 설계의 방향이다. 근로장려세제처럼 일할수록 소득이 늘게 설계하는 것, 자산형성지원으로 만든 자산을 재산에서 빼 주는 것은 「최하위층의 처지를 실제로 낫게 하는가」를 기준으로 삼은 장치들이다.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개선을 본다는 점에서 차등의 원칙의 논리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