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를 시장에 맡길 수 없는 까닭을 경제학의 언어로 정리한 것이 시장실패(market failure)다. 완전경쟁시장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명제에는 여러 전제가 붙는데,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그 전제가 대부분 깨진다.
공공재의 실패. 공공재는 비배제성(대가를 내지 않은 사람을 못 막는다)과 비경합성(한 사람이 써도 다른 사람의 몫이 줄지 않는다)을 갖는다. 그래서 아무도 스스로 값을 치르려 하지 않고(무임승차), 시장에 맡기면 사회가 원하는 양보다 적게 공급된다. 국방·치안이 전형이며, 사회복지의 여러 급여도 사회 전체의 안정이라는 공공재적 효과를 낳는다.
외부효과. 어떤 행위의 이익이나 손해가 당사자 아닌 사람에게 미치는 것을 말한다. 예방접종과 교육은 긍정적 외부효과를 낳으므로 시장에 맡기면 과소 공급되고, 오염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낳으므로 과다 생산된다. 국가가 앞은 보조하고 뒤는 규제하는 근거다.
정보의 비대칭. 의료가 대표적이다. 환자는 자신에게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할 수 없고 공급자가 그것을 정한다. 이때 공급자 유인 수요가 생겨 필요 이상의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도 여기서 나온다 — 민영보험에서 위험이 높은 사람만 가입하려 하면(역선택) 보험이 성립하지 않고, 보험에 든 뒤 위험을 덜 조심하면(도덕적 해이) 비용이 오른다. 강제가입이 사회보험의 요건인 이유가 역선택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와 독점. 초기 투자가 크고 규모가 커질수록 단가가 내려가는 재화는 자연독점이 되기 쉽고, 독점은 가격을 올리고 공급을 줄인다. 위험의 상호의존도 있다 — 실업이나 대규모 재난처럼 여러 사람에게 한꺼번에 닥치는 위험은 민영보험이 감당하지 못한다.
다만 국가의 개입이 언제나 낫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실패도 있다 — 관료제의 비효율, 정보의 부족, 이익집단의 포획, 예산의 팽창 경향이 그것이며,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논거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의 논의는 「시장이냐 국가냐」가 아니라 어느 영역을 누가 맡고 어떻게 섞을 것인가로 옮겨 왔고, 그것이 복지혼합의 문제의식이다.
02이해하기
시장실패의 목록을 외우기보다 왜 그것이 실패인가를 잡는 편이 낫다. 시장이 잘 작동하려면 값을 치른 사람만 쓰고, 효과가 당사자에게만 미치고, 사는 쪽과 파는 쪽이 같은 것을 알아야 한다. 공공재는 첫째를, 외부효과는 둘째를, 정보의 비대칭은 셋째를 깬다. 이 세 전제를 기억하면 낯선 사례도 어디에 넣을지 판단할 수 있다.
03핵심 포인트
공공재의 두 성질은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며, 그 결과가 무임승차와 과소공급이다.
긍정적 외부효과를 낳는 재화(교육·예방접종)는 시장에서 과소 공급된다.
부정적 외부효과(오염 등)를 낳는 재화는 시장에서 과다 생산되므로 국가 규제의 근거가 된다.
정보의 비대칭 — 의료에서 공급자 유인 수요가 생겨 필요 이상의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
역선택은 위험이 높은 사람만 가입하려 해 보험이 성립하지 않는 현상이다.
강제가입이 사회보험의 요건인 가장 큰 근거가 역선택이며, 모두를 묶어야 위험분산이 성립한다.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를 맞바꾼 선지가 단골이다. 역선택은 가입 전, 도덕적 해이는 가입 후의 문제다.
공공재의 성질을 「배제성과 경합성」으로 적으면 틀린다. 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이다.
「시장실패가 있으므로 국가 개입은 언제나 정당하다」로 단정하면 틀린다. 정부실패가 함께 논의된다.
정보의 비대칭을 소비자가 더 많이 아는 상황으로 적은 선지가 있다. 의료에서는 공급자가 더 많이 안다.
06한눈에 보기
역선택 (adverse selection)
계약 전의 문제다. 자신의 위험을 아는 사람만 가입하려 하므로 가입자 집단의 위험이 평균보다 높아지고 보험료가 오르며, 그러면 위험이 낮은 사람이 빠져나가 결국 시장이 무너진다. 강제가입이 해법이다.
VS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
계약 후의 문제다. 보험에 들었으므로 위험을 덜 조심하거나 급여를 더 많이 쓰게 된다. 본인일부부담금, 급여 제한, 실업급여의 대기기간과 재취업 노력 요건이 이를 겨눈 장치다.
시장실패의 갈래와 결과
갈래
무엇이 깨지는가
결과
공공재
비배제성·비경합성
무임승차 → 과소공급
외부효과(긍정)
효과가 당사자 밖으로
과소공급 → 보조
외부효과(부정)
비용이 당사자 밖으로
과다생산 → 규제
정보의 비대칭
사는 쪽과 파는 쪽의 정보 차이
공급자 유인 수요, 역선택·도덕적 해이
규모의 경제
단가가 규모에 반비례
자연독점 → 가격 상승·공급 감소
위험의 상호의존
위험이 한꺼번에 닥침
민영보험이 감당 불가
더 알아보기
강제가입이 사회보험의 본질인 이유
사회보험은 왜 가입을 강제하는가. 가장 강한 근거가 역선택이다.
민영보험에서 보험료는 위험에 비례한다. 건강한 사람은 싸게, 아픈 사람은 비싸게 낸다. 그런데 보험회사는 개인의 위험을 완전히 알 수 없다. 이 상태에서 평균 위험에 맞춰 보험료를 정하면, 자신이 평균보다 건강하다고 아는 사람은 「손해」라며 가입하지 않는다. 남은 가입자의 평균 위험이 올라가고 보험료를 올려야 하며, 그러면 또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빠진다. 이 나선이 반복되면 시장이 사라진다.
강제가입은 이 나선을 끊는다. 모두가 들어와 있으므로 빠져나갈 수 없고, 위험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이 한 집단에 묶여 위험분산이 성립한다. 국민건강보험법이 제5조에서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은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가 된다」고 선언형으로 적은 것, 국민연금법 제8조·제9조가 「당연히 가입자가 된다」고 적은 것이 그 표현이다.
같은 이유로 사회보험의 보험료는 위험이 아니라 소득에 비례한다. 위험에 비례시키면 아픈 사람이 가장 많이 내게 되어 보장의 뜻이 사라진다. 「낸 만큼 받는다」는 보험 원리와 「필요한 만큼 받는다」는 사회적 원리가 사회보험 안에서 섞이는 자리이며, 사회보험과 민영보험의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
정부실패가 논의에 들어온 뒤 달라진 것
시장실패론은 1950~60년대 복지국가 확장기의 이론적 배경이었다. 시장이 못 하는 일이 있으니 국가가 한다는 논리다.
1970년대 이후 이 논리에 반론이 붙었다.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론이다. 관료제는 예산과 조직을 늘리려는 경향이 있고, 정부는 시장보다 정보가 적으며, 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에게 포획되고, 선거를 의식한 정책이 효율을 해친다는 것이다. 공공선택론이 이 논의를 밀고 나갔다.
이 반론의 값은 국가 개입을 정당화하려면 시장실패의 존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낸 데 있다. 시장이 실패했다는 사실과 정부가 그것을 더 잘한다는 사실은 다른 문제이며, 둘을 비교해야 한다.
다만 정부실패론이 사회복지의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데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의료·연금·실업처럼 시장실패가 특히 심한 영역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낫다는 증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의는 복지혼합(welfare mix)으로 옮겨 갔다 — 국가·시장·자원부문·가족의 넷이 각기 잘하는 자리를 맡고, 국가는 직접 공급자에서 재정 부담자와 규제자로 역할을 조정하는 방향이다. 사회복지사업법 제34조제5항이 국가·지자체 설치 시설을 사회복지법인에 위탁할 수 있게 한 것,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가 이용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식으로 설계된 것이 그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