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빈곤의 개념 — 절대·상대·주관

미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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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누구를 도울지가 달라지므로, 개념의 정의는 정책의 출발점이다. 절대적 빈곤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원을 갖지 못한 상태다. 라운트리(Rowntree)가 1899년 요크 조사에서 쓴 방식이 원형이며, 그는 필수품의 목록을 만들고 그 가격을 더해 빈곤선을 세웠다. 이 방식이 전물량방식(마켓 바스켓 방식·라운트리 방식)이고, 식료품비의 비중으로 역산하는 반물량방식(오샨스키 방식·엥겔 방식)이 그 변형이다. 라운트리는 1차적 빈곤(소득이 육체적 효율을 유지할 최소한에도 못 미침)과 2차적 빈곤(소득은 충분하나 다른 지출로 최소한을 유지하지 못함)을 갈랐다. 상대적 빈곤은 그 사회의 일반적 생활수준에 견주어 현저히 낮은 상태다. 타운센드(Townsend)가 대표 이론가로, 빈곤을 「그 사회에서 관습적인 활동과 생활양식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로 보고 박탈지표(deprivation index)로 측정했다. 실무에서는 중위소득의 40·50·60%를 빈곤선으로 쓴다. 우리 기준 중위소득 방식도 여기에 속한다. 주관적 빈곤은 사람들이 스스로 어느 정도가 있어야 살 만하다고 여기는가로 정한다. 라이덴(Leyden) 방식이 대표이며, 「당신의 가구가 그럭저럭 살아가려면 최소 얼마가 필요한가」를 물어 응답과 실제 소득이 만나는 점을 빈곤선으로 삼는다. 개념의 확장으로 사회적 배제(관계와 참여의 결여), 역량 접근(센 — 자원이 아니라 할 수 있음의 결여), 다차원 빈곤(소득·건강·교육·주거 등 여러 차원), 빈곤의 여성화(빈곤층에서 여성 가구주의 비중이 커지는 현상)가 있다.
세 개념을 가르는 물음은 「무엇에 견주는가」다. 절대적 빈곤은 생존의 최소선에, 상대적 빈곤은 남들의 생활수준에, 주관적 빈곤은 사람들의 판단에 견준다. 그래서 경제가 성장하면 절대적 빈곤은 줄지만 상대적 빈곤은 줄지 않을 수 있고, 이 어긋남이 「성장했는데 왜 빈곤은 그대로인가」라는 논쟁의 뿌리가 된다.
  1. 절대적 빈곤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원을 갖지 못한 상태로 라운트리가 원형을 세웠다.
  2. 전물량방식(라운트리·마켓 바스켓)은 필수품 목록을 만들어 그 가격을 합산한다.
  3. 반물량방식(오샨스키·엥겔)은 식료품비에 그 역수를 곱해 빈곤선을 구한다.
  4. 라운트리의 1차적 빈곤은 소득 자체가 모자란 것, 2차적 빈곤은 다른 지출로 모자라지는 것이다.
  5. 상대적 빈곤은 사회의 일반적 생활수준에 견준 것으로 타운센드가 대표 이론가다.
  6. 타운센드는 빈곤을 관습적 생활양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로 보고 박탈지표로 측정했다.
  7. 실무의 상대적 빈곤선은 중위소득의 40·50·60%이며 우리 기준 중위소득도 이 계열이다.
  8. 주관적 빈곤은 사람들이 스스로 얼마가 필요하다고 여기는가로 정하며 라이덴 방식이 대표다.
  9. 센의 역량 접근은 빈곤을 자원의 결여가 아니라 할 수 있음(역량)의 결여로 본다.
  10. 빈곤의 여성화는 빈곤층에서 여성 가구주의 비중이 커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1. 라운트리와 타운센드를 맞바꾼 선지가 흔하다. 라운트리=절대, 타운센드=상대다.
  2. 전물량방식과 반물량방식을 뒤집지 말 것 — 전물량이 목록 전부, 반물량이 식료품비 역산이다.
  3. 「경제가 성장하면 상대적 빈곤도 함께 줄어든다」로 적으면 틀린다. 분포가 그대로면 줄지 않는다.
  4. 「기준 중위소득은 절대적 빈곤선이다」로 적으면 틀린다. 상대적 빈곤선이다.
  5. 센의 역량 접근을 「소득이 충분하면 빈곤이 아니다」로 요약하면 틀린다. 자원이 아니라 역량을 본다.
전물량방식 — 목록을 다 센다

라운트리·마켓 바스켓 방식. 생활에 필요한 품목을 하나하나 정하고 각각의 최저 소요량과 가격을 곱해 더한다. 근거가 뚜렷하고 설명하기 쉽지만, 무엇을 필수품에 넣을지에 자의성이 들어가고 품목을 정하는 데 품이 많이 든다.

반물량방식 — 식료품비로 역산

오샨스키·엥겔 방식. 최저 식료품비를 구한 뒤 엥겔계수의 역수를 곱해 전체 빈곤선을 얻는다. 간편하지만 식료품비 이외의 지출 구조가 달라지면 왜곡되고, 엥겔계수를 어디서 가져오느냐에 따라 결과가 흔들린다.

세 갈래의 빈곤 개념
개념견주는 것대표와 방법
절대적 빈곤생존의 최소선라운트리 — 전물량방식 / 오샨스키 — 반물량방식
상대적 빈곤사회의 일반적 수준타운센드 — 박탈지표 / 중위소득 40·50·60%
주관적 빈곤사람들의 판단라이덴 방식 — 「최소 얼마가 필요한가」 설문
역량 접근할 수 있음센 — 자원이 아니라 기능과 역량의 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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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에서 상대로 옮겨 간 이유와 그 대가

20세기 초의 빈곤 연구는 절대적 개념에서 출발했다. 라운트리가 요크에서 물었던 것은 「이 가구가 육체적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는가」였고, 답은 필수품 목록과 그 가격으로 구했다. 이 방식은 강점이 뚜렷하다. 기준이 객관적으로 보이고, 시간이 지나도 같은 잣대로 비교할 수 있으며, 「이만큼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개발도상국의 절대빈곤 논의나 세계은행의 하루 소득 기준선이 여전히 이 계열이다. 그런데 선진국에서 이 방식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 생존에 필요한 열량만 따지면 빈곤율이 거의 0에 수렴하는데,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다고 느끼고 실제로 사회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어 구직을 못 하고, 교복 값이 없어 아이가 학교에서 겉도는 상태를 「굶지 않으니 빈곤이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다. 타운센드가 빈곤을 「그 사회에서 관습적인 활동과 생활양식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로 다시 정의한 것이 이 지점이다. 빈곤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참여의 문제이며, 필요한 것은 사회마다 시대마다 달라진다. 대가도 있다. 상대적 빈곤선은 분포에 따라 움직이므로 모두의 소득이 두 배가 되어도 빈곤율은 그대로다. 「빈곤을 없애는 것이 원리상 불가능한 정의 아니냐」는 비판이 여기서 나온다. 또 불황으로 중위소득이 내려가면 빈곤선도 내려가 빈곤율이 줄어 보이는 역설도 생긴다. 그래서 실제 정책은 대개 둘을 섞는다. 우리 기준 중위소득은 상대적 기준이지만,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실제 지출 실태를 함께 고려하도록 한 것은 절대적 관점을 남겨 둔 것이다. 개념을 하나만 쓰는 나라는 드물다는 점을 기억해 두면 서술형에서도 쓸 수 있다.

센의 역량 접근이 빈곤 개념에 던진 물음

아마르티아 센은 빈곤을 소득의 부족이 아니라 기본적 역량(capability)의 결여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기능(functioning)은 사람이 실제로 이루는 상태나 행위다 — 잘 먹는 것, 건강한 것, 교육받는 것,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 역량(capability)은 그 기능들의 조합을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왜 소득으로는 부족한가. 같은 소득이라도 소득을 기능으로 바꾸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으면 같은 소득으로 이동과 참여를 이루기 어렵고, 만성질환이 있으면 의료비로 소득이 빠져나간다. 임신·출산기의 여성,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 차별받는 집단도 마찬가지다. 센은 이를 전환의 이질성이라 불렀다. 이 관점이 정책에 주는 함의가 셋이다. 첫째, 현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의료·교육·이동·돌봄 서비스가 함께 있어야 같은 소득이 같은 삶으로 바뀐다. 둘째, 빈곤은 다차원으로 재야 한다 — 소득 한 줄로는 놓치는 결핍이 있다. 유엔개발계획의 다차원빈곤지수(MPI)가 이 생각에서 나왔다. 셋째, 목표는 결과의 균등이 아니라 선택할 자유다. 비판도 있다. 역량은 측정하기 어렵고, 어떤 기능을 목록에 넣을지에 결국 가치 판단이 들어간다는 지적이다. 누스바움이 역량 목록을 제시한 것과, 센 자신이 목록을 확정하기를 거부하고 공적 토론에 맡긴 것이 이 논쟁의 두 답이다. 시험에서는 대개 「자원이 아니라 역량」이라는 한 줄로 나오지만, 왜 소득만으로는 부족한지를 전환의 이질성으로 설명할 수 있으면 서술형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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