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지표로 규모의 윤곽을 잡는다→주요 정보제공자에게 물어 자료 밖의 사정을 듣는다→초점집단으로 왜 그런지의 결을 파악한다→그 내용으로 문항을 만들어 설문조사로 규모를 잰다→공개토론회로 결과를 나누고 우선순위를 함께 정한다
방법이 주는 것과 놓치는 것| 방법 | 얻는 것 | 놓치는 것 |
|---|
| 공개토론회 | 여러 의견을 한 번에, 관심의 환기 | 오지 않는 사람, 대표성 |
|---|
| 설문조사 | 규모와 분포, 대표성 | 질문에 없는 것, 응답하지 않는 사람 |
|---|
| 주요 정보제공자 | 빠르고 저렴, 숨은 사정 | 그 사람의 관점에 갇힘 |
|---|
| 사회지표 분석 | 비용이 적고 시계열·지역 간 비교 | 자료 밖의 사람, 최신성 |
|---|
| 서비스 이용 실태 | 실제 이용의 흐름, 표현적 욕구 | 서비스에 닿지 못한 사람 |
|---|
더 알아보기
방법을 겹쳐 써야 하는 이유 — 사각지대의 짝
욕구사정의 각 방법은 강점과 약점이 정확히 짝을 이룬다. 하나만 쓰면 그 방법이 못 보는 자리가 통째로 비고, 그 자리가 대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사회지표만 쓰면. 통계에 잡히는 사람만 보인다. 주민등록이 없는 사람, 미등록 이주민, 시설이나 병원에 있는 사람,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 사람은 자료에 없다. 그리고 통계는 집계된 수치여서 그 안의 편차를 지운다 — 같은 동의 평균 소득이 중간이어도 그 안에 극단이 있을 수 있다.
설문조사만 쓰면. 응답한 사람만 보인다. 응답률이 낮을 때 응답하지 않는 사람이 무작위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바쁜 사람, 아픈 사람, 글을 읽기 어려운 사람, 낯선 이를 경계하는 사람이 빠지고, 그들이 대개 취약한 쪽이다. 응답률이 낮은 조사의 결과는 조사에 응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공청회만 쓰면. 온 사람만 보인다. 평일 낮에 여는 공청회에는 일하는 사람이 못 오고, 저녁에 열면 돌봄을 맡은 사람이 못 온다. 그리고 공개 석상에서 말하는 것은 훈련이 필요한 일이어서, 말할 줄 아는 사람의 의견이 「주민의 뜻」이 된다.
서비스 이용 실태만 쓰면. 온 사람만 보인다. 앞 장에서 본 표적집단과 클라이언트집단 사이의 누수가 통째로 안 보인다. 대기자가 없다고 욕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신청할 줄 모르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조합이 답이다. 자료로 윤곽을 잡고, 아는 사람에게 숨은 사정을 듣고, 소집단으로 이유를 파악하고, 설문으로 규모를 재고, 공청회로 함께 확인한다. 그러고도 남는 사각지대 — 어떤 방법으로도 잡히지 않는 사람 — 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앞 장에서 본 발굴의 방식으로 따로 찾아 나서야 한다.
공청회를 형식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공개토론회는 사회보장급여법 제35조제2항이 요구하는 「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인의 의견 청취」를 이행하는 흔한 방식이다. 그런데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절차는 지켰으나 얻는 것이 없다.
형식화되는 경로. 계획안이 이미 완성된 뒤에 연다. 자료가 당일에 배부된다. 발표가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고 질의응답이 짧다. 참석자가 관계 기관 종사자 위주다. 나온 의견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다.
실질화하는 방법.
첫째, 시점을 앞당긴다. 계획이 완성된 뒤가 아니라 초안을 만들기 전이나 초안 단계에서 연다. 바꿀 수 있을 때 들어야 의미가 있다.
둘째, 자료를 미리 알기 쉽게 배부한다. 전문 용어와 표로 가득한 자료를 당일에 주면 아무도 읽지 못한다. 요약본을 미리 돌리고 핵심 쟁점을 미리 알린다.
셋째, 여러 번 작게 연다. 큰 강당의 한 번보다 동네별·대상별로 작게 여러 번 여는 편이 참여가 넓어지고 발언이 나온다.
넷째, 시간과 장소를 참여자에 맞춘다. 일하는 사람에게는 저녁이나 주말, 돌봄을 맡은 사람에게는 돌봄 지원을 함께 제공한다.
다섯째, 발언의 형식을 다양하게 한다.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것만이 발언이 아니다. 소그룹 토의, 메모지에 적어 붙이기, 온라인 의견 접수를 함께 두면 말하기 어려운 사람의 의견도 나온다.
여섯째, 반영 결과를 알린다. 나온 의견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 반영했는지, 못 했다면 왜인지 — 를 되돌려 주어야 다음에도 사람이 온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경험이 쌓이고, 그것이 앞 장에서 본 학습된 무력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