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집단 각자 조용히 적는다 → 돌아가며 하나씩 발표(평가 없이)→→ 나온 것을 함께 토론하고 정리 → 투표로 우선순위 결정→델파이 1차 익명 설문 → 결과를 전원에게 알림 → 2차 설문 → 의견이 안정될 때까지 반복→초점집단 6~12명 모집 → 진행자가 이끄는 집중 토론 → 녹취와 분석
세 방법의 대비| 방법 | 만나는가 | 무엇을 얻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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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파이 | 만나지 않는다 — 익명 설문 반복 | 전문가의 합의와 예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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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목집단 | 만나되 먼저 각자 적는다 | 빠짐없는 목록과 투표로 정한 우선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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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점집단 | 만나서 자유롭게 토론 | 이유와 맥락, 감정 등 질적 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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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방법을 어떤 자리에 쓸 것인가
세 방법은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음에 답한다. 어느 물음에 무엇을 쓸지 정리해 두면 실무에서 헤매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욕구가 늘어날까」 — 델파이다. 자료로 답할 수 없고 판단이 필요한 물음이며, 여러 전문가의 판단을 모으되 한 사람의 권위에 쏠리지 않게 해야 한다.
「이 많은 문제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할까」 — 명목집단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빠짐없이 모으고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물음이다. 참여자가 서로 지위가 다를 때 특히 유용하다 — 기관장과 신입 실무자가 함께 앉아도 각자 먼저 적고 시작하므로 모든 의견이 목록에 오른다.
「왜 프로그램에 사람이 오지 않을까」 — 초점집단이다. 설문으로는 「시간이 안 맞아서」 같은 답만 얻지만, 토론에서는 「거기 다니는 걸 이웃이 알까 봐」 같은 진짜 이유가 나온다. 참여자끼리 「나도 그랬다」로 이어지면서 혼자서는 말하지 않을 것이 나온다.
「지역 주민 전체가 무엇을 원하는가」 — 이 셋으로는 답할 수 없다. 서베이가 필요하며, 다음 카드에서 다룬다. 세 방법 모두 소수의 사람에게서 깊이 얻는 방법이지 전체를 대표하지 못한다.
섞어 쓰는 순서도 있다. 초점집단으로 문제의 결을 파악하고, 그 내용으로 설문 문항을 만들어 서베이로 규모를 확인하며, 명목집단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흐름이다. 질적 방법으로 무엇을 물을지 찾고, 양적 방법으로 얼마나인지 재는 조합이 널리 쓰인다.
주의할 점. 어느 방법이든 누구를 참여시키는가가 결과를 정한다. 참여자를 편하게 모으면 이미 관계가 있는 사람들만 오고, 그들의 의견이 「주민의 뜻」이 된다. 앞 장에서 본 보이지 않는 집단을 어떻게 참여시킬지가 방법의 선택보다 앞선 문제다.
초점집단에서 진행자가 하는 일
초점집단은 그냥 모아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행자의 역할에 따라 얻는 것이 크게 달라진다.
구성부터가 설계다. 6~12명이 적정하다고 보는 것은, 너무 적으면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고 너무 많으면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질성과 이질성의 균형이 필요하다. 너무 다르면 서로 이야기가 통하지 않고, 너무 같으면 새로운 관점이 나오지 않는다. 흔히 비슷한 처지의 사람끼리 한 집단으로 묶고, 집단을 여러 개 두어 서로 다른 처지를 각각 듣는다.
위계가 섞이면 말이 막힌다. 이용자와 기관 직원을 같은 자리에 두면 이용자가 솔직히 말하기 어렵다. 앞 장에서 본 권력의존 관계가 그대로 작동하므로, 이해가 갈리는 사람은 나누어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진행자가 하는 일. 첫째,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리를 준다. 몇 사람이 대화를 독점하면 나머지의 이야기가 묻힌다. 둘째, 판단하지 않는다. 진행자가 어떤 답에 고개를 끄덕이면 그 방향으로 이야기가 쏠린다. 셋째, 왜 그런지를 되묻는다. 「불편하다」에서 멈추지 않고 「어떤 때 그런가요」, 「그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로 들어간다. 넷째, 다른 의견을 끌어낸다. 합의가 빨리 이루어지면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은 없나요」를 묻는다. 다섯째, 자기 가설을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기록과 분석. 녹취하고 정리하되, 누가 무엇을 말했는지보다 어떤 주제가 반복해서 나오는지를 본다. 여러 집단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것, 한 집단에서만 강하게 나오는 것, 서로 어긋나는 것을 각각 의미 있게 다룬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초점집단의 결과는 몇 명이 그렇게 생각한다가 아니라 그런 생각과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결과를 「주민의 몇 퍼센트가」로 옮겨 적으면 잘못된 근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