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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자라는 역할이 실제로 하는 일
지역사회개발모델에서 실천가는 조력자(enabler)다. 이 말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본다」로 오해되기 쉬운데, 실제로는 매우 능동적인 역할이다.
첫째, 불만을 초점으로 모은다. 주민들이 각자 흩어져 갖고 있는 불만은 그 자체로는 움직임이 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공통된 것을 찾아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를 하시더라」로 되돌려 주면 개인의 불만이 공동의 문제로 바뀐다.
둘째, 만날 자리를 만든다. 사람들이 모여야 무엇이든 시작되는데, 그 자리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시간과 장소를 잡고, 오라고 청하고, 어색하지 않게 진행하는 일이 필요하다.
셋째, 관계를 잇는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소개하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을 이어 주고, 갈등이 있는 관계를 중재한다. 앞 장에서 본 구조적 공백을 메우는 작업이다.
넷째,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실천가 자신이 주민과 신뢰를 쌓아야 그 다음이 가능하다.
다섯째, 공동의 목표를 강조한다. 논의가 흩어지거나 갈등이 생길 때 「우리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되짚어 준다.
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문제를 대신 규정하지 않고, 해법을 먼저 제시하지 않으며, 대표로 나서서 협상하지 않고, 주민이 할 수 있는 일을 대신 하지 않는다. 조력자의 성공은 자신이 없어도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점. 이 역할은 성과가 늦게 보이고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앞 장에서 본 대로 산출로 평가받는 체계에서 「관계를 만들었다」는 실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조직화 담당자가 실적 압박 속에서 프로그램 운영으로 밀려나는 일이 흔하며, 이것이 이 모델을 현장에서 지키기 어려운 구조적 이유다.
「합의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을 때
지역사회개발모델은 지역사회를 공동의 이익을 가진 하나의 공동체로 전제한다. 이 전제가 성립하면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가 풀리지만, 성립하지 않는 사안이 있다.
전제가 깨지는 자리. 재개발을 두고 소유주와 세입자의 이해가 정면으로 대립할 때, 장애인 시설 설치를 두고 주민이 반대할 때,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 주민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다. 이런 사안에서 「모두의 이익을 위해 대화합시다」는 말은 중립적이지 않다. 현 상태가 유지되면 이득을 보는 쪽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합의를 강조하면 생기는 일. 첫째, 목소리 큰 쪽의 뜻이 합의로 포장된다. 회의에 나올 수 있는 사람, 말할 줄 아는 사람의 의견이 「주민의 뜻」이 된다. 둘째, 약한 쪽이 양보하게 된다. 화합을 깨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요구를 접어야 한다. 셋째, 문제가 개인화된다. 구조적 대립이 「소통의 부족」으로 재규정되면 원인을 다룰 수 없다.
그래서 사안의 성격을 먼저 봐야 한다. 앞 장에서 본 기준 — 이해가 양립 가능한가 — 이 여기서도 쓰인다. 양립 가능하면 개발모델이 맞고,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는 구조라면 뒤에 볼 사회행동모델이 필요하다.
두 모델을 순서로 쓰기도 한다. 먼저 대화를 시도하고, 통하지 않을 때 압력으로 옮겨 간다. 반대로 압력으로 협상 자리를 만든 뒤 그 안에서 합의를 이루기도 한다.
로스만 자신도 세 모델이 섞여 쓰인다고 보았다. 뒤에 그는 세 모델의 혼합 형태 — 개발과 행동의 결합, 계획과 개발의 결합 — 를 논의했고, 실제 실천은 하나의 모델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험에서는 세 모델을 구분해 묻지만, 실무에서는 어느 축을 얼마나 쓸 것인가의 배합 문제로 다루는 것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