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의미

사회구성주의와 다원주의

미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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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구성주의(social constructionism)는 현실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언어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본다. 무엇이 문제인지, 누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어떤 상태가 정상인지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관점이다. 주요 명제 — 지식은 맥락 안에서 만들어진다(보편적 진리보다 상황적 이해), 언어가 현실을 만든다(어떻게 이름 붙이느냐가 그 대상을 규정한다), 다수의 현실이 공존한다(같은 상황을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한다), 전문가의 지식도 하나의 구성물이다. 지역사회복지에 주는 함의 — 첫째, 문제의 규정 자체를 되묻는다.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라는 이름이 그 지역을 규정하고 주민의 자기인식까지 바꾼다. 둘째, 당사자의 이야기를 중시한다. 전문가의 사정만이 아니라 주민이 자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실천의 자료가 된다. 셋째,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한다 — 다른 문화의 방식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구성이다. 앞 장에서 본 상호학습의 이론적 근거다. 다원주의(pluralism)는 사회에 여러 이익집단이 존재하며 권력이 하나에 집중되지 않고 분산되어 있다고 본다. 정책은 이들 집단이 경쟁하고 협상한 결과로 나온다. 지역사회복지에 주는 함의 — 지역사회에는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집단이 있으므로, 자기 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조직을 만들고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방법이 된다. 조직되지 않은 집단은 정책 결정에서 배제되므로 조직화가 곧 힘이다. 엘리트주의와의 대비 — 엘리트주의는 실제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에 집중되어 있으며 다원주의적 경쟁은 표면일 뿐이라고 본다. 다원주의에 대한 비판은 조직될 자원이 없는 집단이 애초에 경쟁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두 이론이 지역사회복지에 주는 것은 각각 다르다. 사회구성주의는 「그 규정이 옳은가」를 되묻게 하고, 다원주의는 「조직되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앞은 문제를 다시 보게 하고 뒤는 조직화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두 이론에 대한 비판도 같은 방향이다 — 사회구성주의는 물질적 조건의 실재를 흐리기 쉽고, 다원주의는 조직될 자원이 없는 집단을 설명하지 못한다.
  1. 사회구성주의는 현실이 사람들의 상호작용과 언어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본다.
  2.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상태가 정상인지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관점이다.
  3. 언어가 현실을 만든다 — 어떻게 이름 붙이느냐가 그 대상을 규정한다고 본다.
  4. 전문가의 지식도 맥락 속의 하나의 구성물이며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본다.
  5. 실천에서는 문제의 규정 자체를 되묻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중시하게 한다.
  6. 사회구성주의는 앞 장에서 본 상호학습과 문화적 다양성 존중의 이론적 근거다.
  7. 다원주의는 사회에 여러 이익집단이 있고 권력이 하나에 집중되지 않는다고 본다.
  8. 다원주의에서 정책은 여러 이익집단이 경쟁하고 협상한 결과로 만들어진다.
  9. 다원주의의 실천적 함의는 조직되지 않은 집단은 결정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10. 다원주의에 대한 비판은 조직될 자원이 없는 집단이 경쟁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1. 「사회구성주의는 객관적 현실이 존재한다고 본다」로 적으면 틀린다. 구성된다고 본다.
  2. 「전문가의 지식은 구성물이 아니다」로 적으면 이 관점과 어긋난다.
  3. 다원주의와 엘리트주의를 맞바꾸지 말 것 — 다원주의는 권력의 분산을 전제한다.
  4. 「다원주의에서는 조직되지 않아도 이익이 반영된다」로 적으면 틀린다. 조직이 힘이다.
  5. 사회구성주의를 「모든 것이 상대적이므로 판단할 수 없다」로 요약하면 과장이다.
사회구성주의 — 문제의 이름과 규정을 되묻는다당사자가 자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듣는다다원주의 — 그 이해를 대변할 조직을 만든다조직으로 협상과 결정의 자리에 들어간다다만 조직될 자원이 없는 집단이 남는다는 한계를 함께 본다
두 이론이 던지는 물음
이론묻는 것실천의 방향
사회구성주의그 규정이 누구의 것인가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규정을 다시 본다
다원주의누가 협상 자리에 있는가조직을 만들어 협상에 참여한다
엘리트주의실제 결정은 누가 하는가표면의 경쟁 뒤의 권력 구조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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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현실을 만든다 — 사회구성주의의 실천적 값

사회구성주의는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지역사회복지에서 매우 구체적인 함의를 갖는다. 어떻게 부르느냐가 무엇을 하는가를 정하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 다른 이름. 한 지역에 일자리가 없고 소득이 낮은 사람이 많다고 하자. 이를 「낙후 지역」이라 부르면 개발이 처방이 되고, 「저소득층 밀집지역」이라 부르면 복지 서비스가 처방이 되며, 「일자리가 사라진 지역」이라 부르면 경제 정책이 처방이 된다. 「주민들이 오래 살아온 마을」이라 부르면 또 다른 것이 보인다. 이름이 처방을 정하고, 처방이 자원의 배분을 정한다. 당사자에 대한 이름도 같다. 「수급자」, 「취약계층」, 「어려운 이웃」, 「주민」 가운데 무엇으로 부르느냐가 관계를 정한다. 앞의 셋은 결핍을 중심에 두고 마지막은 대등한 자리를 준다. 자기인식까지 바꾼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붙은 이름을 내면화한다. 「도움받는 사람」으로 계속 불리면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게 되고,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잃는다. 앞 장에서 본 임파워먼트가 이 지점을 겨눈다. 실천에서 할 수 있는 것. 주민이 자기 지역과 자신을 어떻게 부르는지 듣는 것, 사업의 이름을 결핍이 아니라 지향으로 짓는 것, 강점 관점으로 다시 서술하는 것, 당사자가 스스로 말할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과잉 해석의 경계. 사회구성주의를 「모든 것이 구성물이므로 실재하는 것은 없다」로 밀고 가면 위험하다. 굶주림과 추위와 병은 어떻게 이름 붙이든 실재하며, 그것을 「하나의 구성」으로 취급하면 개입의 근거가 사라진다. 정확한 이해는 어려움은 실재하되 그것을 무엇으로 규정하고 어떻게 다룰지는 구성된다는 것이다.

다원주의가 설명하지 못하는 자리

다원주의는 정책이 이익집단의 경쟁과 협상으로 결정된다고 본다. 이 관점은 실천에 유용한 처방을 준다 — 조직해서 협상 자리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처방이 닿지 않는 자리가 있다. 조직될 자원이 없는 집단. 조직을 만들려면 시간·돈·정보·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자원이 가장 부족한 사람들이 대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하루하루 생계에 매인 사람, 아픈 사람, 돌봄에 묶인 사람은 회의에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조직될 수 있는 집단만 협상에 들어오고, 결과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자원이 있는 쪽이 더 얻는다. 대변될 수 없는 사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 의사 표현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 정신적 능력이 제한된 사람, 그리고 자신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은 스스로 조직할 수 없다. 의제 설정 단계의 배제. 다원주의는 협상 자리에서의 경쟁을 보는데, 실제 권력은 무엇이 의제가 되는가를 정하는 단계에서 작동한다. 어떤 문제는 애초에 논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그 배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바크라크와 바라츠가 말한 권력의 두 번째 얼굴이고, 루크스가 말한 세 번째 얼굴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래서 실천의 과제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조직될 수 있는 집단을 조직하는 것 — 다원주의의 처방이다. 다른 하나는 조직될 수 없는 사람을 대신해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 뒤에 볼 옹호(advocacy)다. 옹호가 지역사회복지 실천 기술의 하나로 자리 잡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과제는 순서가 있다. 당사자가 말할 수 있으면 대신 말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옹호는 말할 수 없는 동안의 임시 대리이며 궁극적으로는 당사자가 스스로 말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앞 장의 자기결정 원칙이 옹호의 한계를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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