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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학습이 실천을 바꾸는 자리
상호학습(mutual learning)은 지역사회복지실천의 가치 가운데 실무에서 가장 자주 무너지는 것이기도 하다.
왜 필요한가. 실천가는 사회복지의 지식과 제도, 자원의 경로를 안다. 그러나 그 지역에서 사는 것이 어떤지는 주민이 안다. 어느 골목이 밤에 위험한지, 누가 실제로 어려운지, 왜 그 사업에 사람이 안 오는지, 어떤 말이 상처가 되는지는 자료에 나오지 않는다. 이 지식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설계도 헛돈다.
무너지는 경로. 실천가가 「도와주러 온 사람」의 자리에 서면 관계가 일방향이 된다. 주민은 받는 사람이 되고, 자기 생각을 말해도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몇 번 겪으면 말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실천가는 「주민들이 무관심하다」고 결론짓고, 그 결론이 다시 일방향의 개입을 정당화한다.
되살리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묻는 것으로 시작하기 — 사업을 설명하기 전에 그 지역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 주민의 지식을 자료로 쓰기 — 주민이 그린 마을 지도, 주민이 꼽은 문제 목록을 사업의 근거로 삼고 그렇게 했음을 밝힌다. 결정의 자리에 주민을 두기 — 자문이 아니라 실제로 결정하는 자리여야 한다. 틀렸을 때 인정하기 — 실천가의 판단이 주민의 지적으로 바뀌는 경험이 쌓여야 관계가 상호적이 된다.
프레이리의 영향이 이 가치의 배경에 있다. 그는 교육을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지식을 넣어 주는 것(은행 저금식 교육)」이 아니라 함께 세계를 읽고 이름 붙이는 대화로 보았다. 지역사회복지의 상호학습과 비판의식 개발은 이 사상에서 직접 왔으며, 뒤에 볼 임파워먼트 실천의 뿌리이기도 하다.
정상화 원리가 걸어온 길과 남은 논쟁
정상화(normalization)는 1950년대 덴마크에서 시작되었다. 뱅크미켈센은 지적장애인 부모회의 요구를 받아 「지적장애인이 가능한 한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이라는 문구를 법에 넣었다. 대규모 수용시설이 표준이던 시대에 나온 요구다.
스웨덴의 니르에가 이를 정식화했다. 그는 정상화를 하루의 정상적 리듬(원할 때 일어나고 자고 먹는 것), 한 주의 정상적 리듬(평일과 주말이 다른 것), 한 해의 정상적 리듬(계절과 명절), 생애주기의 정상적 경험(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대우받는 것), 선택과 자기결정의 존중, 남녀가 함께 사는 세계, 정상적인 경제 수준, 정상적인 환경 기준으로 구체화했다. 곧 정상화는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조건 목록이다.
미국의 울펜스버거는 이를 사회적 역할의 가치화(SRV, social role valorization)로 발전시켰다. 핵심은 장애인이 사회에서 가치 있는 역할을 갖게 하는 것이며, 그러려면 서비스의 방식 자체가 그 사람의 사회적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다.
남은 논쟁도 있다. 첫째, 「정상」의 기준이 누구의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다수의 생활 방식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규범 강요가 될 수 있다. 둘째, 개인의 변화 요구로 오해될 위험이다. 원리는 환경을 바꾸라는 것인데 실무에서는 「일반인처럼 행동하도록」 훈련하는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 셋째, 조건 없는 탈시설의 문제다. 앞 장에서 본 대로 지역에 살 조건을 갖추지 않은 채 시설만 줄이면 방치가 된다.
그래서 오늘의 논의는 정상화를 자립생활(IL) 이념과 함께 읽는 쪽으로 갔다. 자립생활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자립으로 보며, 필요한 지원을 받으면서 자기 삶을 결정하는 상태를 겨눈다. 우리 제도의 활동지원과 자립생활센터가 이 계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