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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구에서 출발한다」가 실무에서 어려운 이유
모든 원칙 목록의 앞자리에 오는 것이 욕구에서 출발하라는 요구다. 당연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왜 그런지 보면 원칙의 무게가 이해된다.
첫째, 재원이 사업을 정한다. 앞 장에서 본 정치경제이론이 설명한 대로, 기관은 공모 사업의 재원으로 움직인다. 공고가 나면 그 주제에 맞는 사업을 구상하게 되고, 지역의 실제 필요와 어긋나도 재원을 놓칠 수 없다. 「욕구에서 출발」이 아니라 「재원에서 출발」이 되는 것이다.
둘째, 욕구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든다. 제대로 하려면 조사하고 만나고 들어야 하는데, 사업 기간은 정해져 있고 실적을 내야 한다. 그래서 앞선 해의 사업을 조금 고쳐 이어 가는 편이 안전하다.
셋째, 누구의 욕구인지가 갈린다. 앞 장에서 본 브래드쇼의 네 욕구가 여기서 작동한다. 전문가가 보는 규범적 욕구, 주민이 느끼는 인지적 욕구, 신청으로 드러난 표현적 욕구가 어긋날 때 무엇을 따를 것인가. 목소리 큰 주민의 요구가 곧 지역의 욕구는 아니며, 정작 도움이 절실한 사람은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넷째, 욕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만 필요를 말한다. 존재하는 줄 몰랐던 서비스는 요구할 수 없다. 그래서 욕구 파악은 묻는 것만이 아니라 가능한 것을 알리고 함께 상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실무의 절충은 몇 가지다. 재원의 틀 안에서 지역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 정기적으로 욕구조사를 해 두어 공고가 났을 때 근거를 갖고 있는 것, 조사에서 말하지 않는 사람의 자리를 따로 살피는 것, 그리고 앞 장에서 본 대로 여러 종류의 욕구를 겹쳐 보는 것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원칙의 실제 무게
과정 중시는 지역사회복지실천을 다른 개입과 가르는 원칙이다. 다만 이 말이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로 오해되기 쉬우므로 정확히 짚을 필요가 있다.
무엇을 뜻하는가. 같은 결과라도 누가 어떻게 이르렀는가에 따라 남는 것이 다르다는 뜻이다. 놀이터를 새로 만드는 일을 예로 들면, 기관이 예산을 따와 업체에 맡겨 지으면 놀이터가 생긴다. 주민이 필요를 제기하고 서명을 모으고 구청과 협의해 만들면 놀이터와 함께 주민조직이 생긴다. 그리고 그 조직은 다음 문제 앞에서 다시 움직인다.
로스의 지역사회조직 이론이 이 관점의 고전이다. 그는 지역사회조직의 목표를 과제 목표(task goal)와 과정 목표(process goal)로 나누었다. 과제 목표는 구체적 문제의 해결이고, 과정 목표는 주민의 문제 해결 능력과 협력의 관계를 기르는 것이다. 뒤에 볼 로스만의 세 모델 가운데 지역사회개발모델이 과정 목표를 앞세우고, 사회계획모델이 과제 목표를 앞세운다.
과정 중시가 치르는 대가도 인정해야 한다. 느리다. 주민의 의견이 갈려 결론이 나지 않기도 하고, 전문가가 보기에 비효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급한 문제 — 당장 끼니가 없는 사람, 위험에 놓인 아동 — 앞에서 과정을 밟을 여유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판단이 필요하다. 긴급한 위기에는 신속한 개입이 앞서고, 지역의 구조적 문제에는 과정이 앞선다. 그리고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경우가 많다 — 위기 가구는 즉시 지원하되, 그런 가구가 반복해서 생기는 구조는 주민과 함께 다루는 식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것이 결과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이 요점이다. 오히려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오래간다는 경험적 판단이 이 원칙의 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