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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과 수평의 긴장이 사회복지 현장에 나타나는 모습
워렌의 수평·수직 구분은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사회복지 현장의 익숙한 딜레마를 정확히 짚는다.
수직적 관계가 강한 기관을 생각해 보자. 국고보조 사업과 중앙 부처의 지침, 상급 법인의 방침에 따라 움직인다. 재원이 안정적이고 전문성 있는 매뉴얼과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사업의 내용이 위에서 정해져 내려오므로 그 지역의 실제 필요와 어긋날 수 있다. 지역 주민이 원하는 것과 지침이 요구하는 것이 다를 때, 기관은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 — 앞 장에서 본 자원 의존이 여기서 작동한다.
수평적 관계가 강한 기관은 반대다. 지역의 주민조직, 상인회, 학교, 종교기관, 다른 복지기관과 촘촘히 이어져 있다. 지역의 문제를 함께 발견하고 자원을 서로 융통한다. 그런데 큰 재원이 없다. 자원봉사와 소액 후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좋은 실천은 둘을 함께 쓴다. 수직적 통로로 재원과 제도를 끌어오되, 그것을 수평적 관계 안에서 지역에 맞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지침이 정한 틀 안에서 지역의 필요에 맞게 운영하고, 남는 부분은 지역의 자원으로 메운다.
우리 제도에도 이 구조가 들어 있다. 사회보장급여법 제35조는 시·군·구가 계획을 세우면 시·도가 그것을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한 계획을 세우도록 한다. 아래에서 올라온 것을 위가 뒷받침하는 구조이며,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보내는 방식과 다르다. 다만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며, 지역의 계획이 상급 계획의 틀에 맞추어 쓰이는 경향이 지적되어 왔다.
지역사회복지사의 자리가 여기서 정해진다. 위에서 온 자원과 아래의 필요를 잇는 사람이며, 어느 한쪽만 보면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서비스 영역의 일치성」이 왜 척도가 되는가
네 척도 가운데 서비스 영역의 일치성은 처음 보면 왜 중요한지 짐작하기 어렵다. 학군과 행정구역과 생활권이 겹치느냐가 무슨 문제인가.
일치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가. 같은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고, 그 부모들이 같은 주민센터를 이용하며, 같은 상점에서 마주치고, 같은 병원에 다닌다. 만남이 여러 영역에서 겹쳐 쌓이므로 관계가 두터워진다.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를 시장에서 다시 만나고 주민 모임에서 또 만난다. 사회학에서 다중적 관계(multiplex ties)라 부르는 것이며, 이런 관계는 단일한 관계보다 훨씬 강한 신뢰와 상호 의무를 낳는다.
어긋날 때는 반대다. 아이는 다른 동네 학교에 다니고, 장은 큰길 건너 대형마트에서 보며, 병원은 다른 구로 가고, 직장은 또 다른 곳이다. 각 영역에서 만나는 사람이 모두 달라 어느 관계도 쌓이지 않는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서로 모르는 상태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실천에 주는 함의가 크다. 일치성이 낮은 지역에서 「주민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렵다. 공통의 경험과 마주칠 계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는 일치하는 영역을 찾거나 만들어야 한다 — 아이를 키우는 부모, 같은 시간에 산책하는 사람, 같은 종교기관에 다니는 사람처럼 겹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행정 단위의 문제도 이 척도와 얽힌다. 사회복지 서비스는 행정구역을 따라 제공되는데, 주민의 실제 생활권은 행정구역과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길 하나 건너면 다른 구여서 이용할 수 없는 시설이 생기고, 생활권은 하나인데 두 지자체가 따로 계획을 세운다. 앞 장에서 본 전달체계의 파편화가 지리적 형태로 나타나는 자리이며, 인접 지자체 간 협력이 요구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