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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상조가 제도로 옮겨 간 과정과 그 대가
길버트와 스펙트의 다섯 기능 가운데 사회복지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상부상조다. 이 기능이 어떻게 옮겨 왔는지 보면 사회복지제도의 성격이 드러난다.
본래 담당자는 가족과 이웃이었다. 병이 나면 친척이 돌보고, 흉년이 들면 마을이 나누고, 사고가 나면 이웃이 도왔다. 우리 전통의 두레·품앗이·계·향약이 그 제도화된 형태다. 이 방식은 관계에 기초하므로 빠르고 유연하며 낙인이 적었다.
한계도 뚜렷했다. 도울 수 있는 범위가 그 관계망의 크기를 넘지 못했다. 마을 전체가 어려우면 아무도 도울 수 없고, 관계망 밖의 사람 — 떠돌이, 낯선 이, 배제된 사람 — 은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도움이 권리가 아니라 시혜였으므로 받는 사람은 관계 안에서 낮은 자리에 놓였다.
산업화가 이 방식을 무너뜨렸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따라 이동하면서 관계망이 흩어졌고, 임금노동에 의존하게 되면서 실업과 질병의 타격이 커졌으며, 가족이 작아지면서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줄었다. 앞 장에서 본 지리적 결속의 약화가 이 기능에 가장 직접적으로 닿았다.
그래서 국가와 공식 제도가 그 자리를 맡았다.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가 그것이며, 우리 법에서는 사회보장기본법과 사회복지사업법이 그 근거다. 이 전환의 이득은 크다 — 관계와 무관하게 권리로 보장되고, 규모가 커져 큰 위험도 감당하며, 절차가 있어 자의가 줄었다.
대가도 있다. 절차가 필요해 즉시성이 떨어지고, 자격을 가려야 하므로 조사와 낙인이 따르며, 관계가 아니라 급여만 남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지역사회복지의 오랜 과제가 제도의 보장 위에 관계를 다시 얹는 것이 되었다. 뒤에 볼 지역사회조직화와 주민 참여, 통합돌봄이 모두 이 방향을 겨눈다.
다섯 기능으로 지역을 진단하기
다섯 기능은 이론적 분류에 그치지 않고 한 지역을 진단하는 틀로 쓸 수 있다. 각 기능이 그 지역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물으면 문제의 지점이 보인다.
생산·분배·소비가 약한 지역은 일자리가 없고 상권이 무너진 곳이다. 젊은 층이 떠나고 남은 사람의 소득이 낮으며,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멀리 나가야 한다. 개입의 방향은 일자리와 지역 경제이며, 뒤에 볼 지역사회 사회경제개발 모델과 사회적경제가 이 자리를 겨눈다.
사회화가 약한 지역은 아이들이 배우고 자랄 환경이 부실한 곳이다. 돌봄의 공백, 교육 자원의 부족, 어른의 모델이 없는 상태가 그렇다. 방과후 돌봄, 지역아동센터, 멘토링이 대응이다.
사회통제가 약한 지역은 안전이 흔들리는 곳이다. 다만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다 —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늘 답은 아니며, 오히려 특정 집단에 대한 감시로 흐르기 쉽다. 비공식 통제, 곧 서로를 아는 관계가 회복되는 편이 나은 경우가 많다.
사회통합이 약한 지역은 사람들이 서로 모르고 소속감이 없는 곳이다. 이웃 간 갈등이 잦고, 새로 온 사람이 겉돌며, 공동의 일에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마을 행사, 공동체 공간, 주민 모임이 대응이며 뒤에 볼 조직화 기술이 다루는 자리다.
상부상조가 약한 지역은 어려움이 생겨도 아무도 모르는 곳이다. 앞 장에서 본 발굴의 문제이며, 공식 제도와 비공식 관계를 함께 세워야 한다.
진단의 요령은 어느 기능이 약한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능들이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으면(경제) 젊은 층이 떠나고, 그러면 아이가 줄어 학교가 없어지며(사회화), 사람이 줄어 모임이 사라지고(통합), 결국 서로 돌볼 사람도 없어진다(상부상조). 한 기능의 약화가 다른 기능으로 번지므로, 개입도 한 곳만 손대서는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