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빙 — 현 상태의 문제를 드러내 변화의 필요를 인식시킨다→변화 — 새 방식을 도입하고 학습하며 시행착오를 겪는다→재동결 — 제도·평가·문화에 심어 되돌아가지 않게 한다
샤인의 세 수준| 수준 | 무엇인가 | 보이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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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물 | 사무실 배치, 복장, 언어, 의식과 행사, 전해지는 이야기 | 보이지만 해석이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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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방하는 가치 | 사명 선언문, 규정,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신념 | 말해지지만 실제와 다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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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가정 | 당연하게 여겨 의식조차 되지 않는 전제 | 보이지 않으나 행동을 좌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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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가정을 드러내는 법 — 문화를 바꾸는 첫 단계
샤인의 세 수준 가운데 실무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 가정이다. 그런데 정의상 이것은 의식되지 않으므로 직접 물어서는 알 수 없다. 「우리 기관의 기본 가정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표방하는 가치를 말한다.
그래서 어긋남을 찾는 것이 방법이 된다.
표방하는 가치와 인공물이 어긋나는 자리를 본다. 「수평적 소통」을 표방하는데 회의에서 아무도 상급자와 다른 의견을 내지 않는다면, 기본 가정은 「반대 의견은 위험하다」이다. 「클라이언트 중심」을 내걸었는데 실적 회의에서 건수만 이야기한다면, 기본 가정은 「숫자가 실제 평가 기준이다」이다.
예외가 처리되는 방식을 본다. 규정을 어긴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실수를 보고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기본 가정을 드러낸다. 실수를 보고하면 질책받는 조직에서는 「문제는 감추는 것」이 기본 가정이며, 아무리 「투명성」을 표방해도 사고는 감춰진다.
신입에게 무엇을 알려 주는지를 본다. 「저건 그냥 형식이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 얘기는 하지 마」 같은 조언이 곧 기본 가정의 전수다. 앞 장에서 본 비공식조직이 문화가 전해지는 통로다.
시간과 자원이 어디로 가는지를 본다. 무엇에 예산과 인력을 쓰는가, 무엇을 미루는가가 실제 우선순위를 보여 준다.
이렇게 드러낸 기본 가정을 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레빈의 해빙에 해당한다. 「우리는 사실 이렇게 일하고 있다」를 함께 인정하지 않으면 변화는 표방하는 가치를 하나 더 얹는 데서 끝난다. 앞 장의 탈동조가 바로 그 결과이며, 조직문화를 다루지 않은 개편이 실패하는 이유다.
재동결을 건너뛰면 생기는 일
레빈의 3단계 가운데 실무에서 가장 자주 생략되는 것이 재동결이다. 새 방식을 도입하는 데까지는 힘을 쏟고, 그것이 자리 잡았는지 확인하는 데는 힘을 쓰지 않는다.
결과는 원상복귀다. 새 서식을 만들었는데 몇 달 뒤 예전 서식을 쓰고 있고, 사례회의를 주 1회로 정했는데 바빠지자 건너뛰기 시작하며, 교육을 받았는데 현장에서는 예전 방식대로 한다.
왜 되돌아가는가. 옛 방식은 몸에 익어 편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하며, 새 방식을 지키는 데 드는 추가 노력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의 초기에는 관심과 감시가 있지만 그것이 사라지면 균형점은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재동결의 구체적 수단이 몇 가지다.
제도에 심는 것. 새 방식을 규정과 업무 절차에 넣고, 결재 경로와 서식을 바꾼다. 옛 방식으로는 아예 처리가 되지 않게 만들면 되돌아갈 수 없다. 정보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가장 강력한 재동결인 이유다.
평가에 반영하는 것. 새 방식을 얼마나 지켰는지가 평가에 들어가야 한다. 평가에 없는 것은 하지 않게 된다.
성과를 보여 주는 것. 바꾼 뒤 무엇이 좋아졌는지를 자료로 확인해 공유한다. 변화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면 「해 보니 별거 없더라」로 정리된다.
교육과 신입 사회화에 넣는 것.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처음부터 새 방식을 가르치면, 시간이 지날수록 새 방식이 다수가 된다.
상징적 조치. 잘 실행한 사람을 인정하고, 관리자가 스스로 새 방식을 따르는 것이다. 관리자가 예외를 두면 그 순간 「이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기본 가정이 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환경이 계속 바뀌는 조직에서는 완전한 재동결이 오히려 다음 변화를 막는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앞 장에서 본 학습조직은 재동결 대신 지속적 변화의 상태를 유지하는 쪽을 제안한다. 두 관점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굳히고 무엇을 열어 둘지를 가리는 문제로 읽는 것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