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구제제도의 기록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고국천왕 16년(194) 을파소의 건의로 시행된 진대법(賑貸法)은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기에 갚게 한 제도로, 관곡 진대의 시초로 평가된다. 고려는 흑창ㆍ의창(빈민 구제용 곡식 비축), 상평창(물가 조절), 제위보(기금 운용), 동서대비원과 혜민국(의료 구제)을 두었다. 조선은 의창ㆍ상평창ㆍ진휼청과 함께 환곡을 운영했고, 민간의 상호부조로 계ㆍ두레ㆍ향약이 작동했다. 근대적 사회사업은 일제강점기 조선구호령(1944)에서 형식적 틀을 얻었고, 해방과 6ㆍ25 전쟁을 거치며 외국 원조기관 중심의 구호가 이루어졌다. 1961년 생활보호법 제정으로 공공부조의 법적 틀이 갖춰졌고, 1987년 사회복지전문요원 배치, 2000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시행, 2003년 사회복지사 1급 국가시험 실시로 전문직화가 진전되었다.
02이해하기
전통 구제제도를 외울 때 「무엇을 조절하는가」로 나누면 정리된다. 의창ㆍ흑창은 빈민에게 곡식을 나눠 주는 구빈이고, 상평창은 곡가를 조절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물가정책이며, 동서대비원ㆍ혜민국은 의료다. 진대법이 특별한 이유는 「빌려주고 갚게 한다」는 점 — 무상 급여가 아니라 대여였고, 이 방식이 조선의 환곡으로 이어져 나중에는 고리대로 변질되며 삼정문란의 한 축이 된다. 제도의 설계가 좋아도 운영이 무너지면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03핵심 포인트
진대법(194, 고구려 고국천왕) — 을파소의 건의. 춘대추납의 관곡 진대
고려 — 흑창ㆍ의창(구빈), 상평창(물가), 제위보(기금), 동서대비원ㆍ혜민국(의료)
조선 — 의창ㆍ상평창ㆍ진휼청, 환곡. 민간의 계ㆍ두레ㆍ향약
조선구호령(1944) — 일제강점기. 근대적 구호의 형식적 틀이나 식민통치의 성격이 강했다
곡가가 쌀 때 사들이고 비쌀 때 팔아 물가를 조절. 목적은 시장 안정이며 구빈은 그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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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전달체계의 변천 — 누가 현장에서 만나 왔는가
우리나라 공공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변화는 몇 개의 분기점으로 정리된다. 1987년 저소득층 밀집지역의 읍ㆍ면ㆍ동에 사회복지전문요원(별정직)이 배치되면서 공공 영역에 사회복지 전문인력이 처음 자리 잡았고, 2000년 이들이 사회복지직 공무원(일반직)으로 전환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주민생활지원서비스 전달체계 개편으로 시ㆍ군ㆍ구에 통합 창구를 두려는 시도가 있었고,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이 구축되어 여러 부처의 복지급여 정보가 한 곳에서 관리되기 시작했다. 2014년 「사회보장급여의 이용ㆍ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사각지대 발굴과 통합사례관리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고, 2016년 이후 읍ㆍ면ㆍ동 복지허브화(맞춤형 복지팀 설치)로 찾아가는 서비스가 확대되었다. 이 변화의 일관된 방향은 「신청을 기다리는 행정」에서 「찾아 나서는 행정」으로의 전환이며, 동시에 흩어진 급여와 서비스를 한 사람 기준으로 묶으려는 시도다. 다만 인력 대비 담당 사례 수가 과중하다는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있다.
민간 사회복지의 뿌리 — 계ㆍ두레ㆍ향약과 근대 사회사업기관
전통사회의 상호부조는 세 갈래로 정리된다. 계(契)는 특정 목적을 위해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조직으로 혼례ㆍ상례ㆍ학자금 등 목적별로 다양했고, 두레는 농번기 노동력을 공동으로 교환하는 조직이었으며, 향약(鄕約)은 덕업상권ㆍ과실상규ㆍ예속상교ㆍ환난상휼의 네 강목으로 향촌의 규범과 상호부조를 함께 규율했다. 이 가운데 환난상휼(어려움을 당하면 서로 돕는다)이 오늘날의 상호부조에 가장 가깝다. 근대적 사회사업기관은 개항 이후 선교사들이 세운 고아원ㆍ병원에서 시작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사회사업협회 등이 설립되었으나 식민 통치의 성격을 벗지 못했다. 해방과 6ㆍ25 전쟁 이후에는 외국 민간원조단체(KAVA)가 고아원과 구호사업을 주도했으며, 1970년대 이후 정부 지원과 함께 사회복지법인ㆍ사회복지관 체계가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 민간 사회복지가 외원(外援) 의존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이후 재정 구조와 정부-민간 관계에 오래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있다.
05기출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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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는 격화된 노동운동을 진정시키기 위해 사회보험을 도입하였다.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은 노동자를 위한 선의라기보다 사회주의 세력을 누르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사회주의자진압법으로 억누르면서 질병·재해·노령보험으로 달래는 채찍과 당근의 짝이었고, 그럼에도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이라는 자리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