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죽음 — 퀴블러-로스의 다섯 단계

미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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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블러-로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만나며, 그 사실을 받아들여 가는 과정에 다섯 단계가 있다고 정리했다. 부정은 「그럴 리 없다」며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단계다. 충격을 한꺼번에 받지 않도록 완충하는 기능을 한다. 분노는 「왜 하필 나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주위 사람과 세상을 향해 화를 내는 단계다. 이 화가 가족과 의료진에게 향하는 일이 많아, 그 화가 자기들을 겨눈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타협은 「조금만 더 살게 해 주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조건을 걸어 보는 단계다. 우울은 상실이 현실로 다가와 깊이 가라앉는 단계로, 준비된 슬픔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용은 사실을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정리하는 단계다. 중요한 것은 이 단계가 반드시 순서대로 오지도, 모두가 거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오갔다가 되풀이되기도 하고 어떤 단계는 건너뛰기도 한다. 퀴블러-로스 자신도 이를 고정된 계단으로 보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겪는 것에 이름을 붙여 준 것에 가깝다. 이 틀은 남은 사람들의 애도에도 응용된다. 다만 애도를 단계로만 보면 「이쯤이면 지났어야지」라는 요구가 되기 쉬워, 오늘날에는 상실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겪어 내며 없이 지내는 법을 익히고 관계를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과제로 설명하는 관점이 함께 쓰인다. 실천에서 요구되는 것은 단계를 맞히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있는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일이다. 이 이론이 남긴 가장 큰 것은 단계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전까지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병명조차 알리지 않는 일이 흔했고, 죽어 가는 사람은 자기 일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오늘날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같은 제도가 자리 잡은 흐름의 출발점에 이 작업이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흔히 하는 실수는 위로하려고 말을 서두르는 것이다. 「곧 나아질 거예요」라는 말은 부정을 도와주고, 「받아들이셔야죠」라는 말은 수용을 재촉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일이다. 다섯 단계를 배우는 뜻도 순서를 외우는 데 있지 않고, 지금의 화와 침묵이 이상한 것이 아님을 알아 견디는 데 있다.
  1.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다섯으로 정리했다.
  2. 부정은 충격을 한꺼번에 받지 않도록 나누어 받게 해 주는 완충 기능을 한다.
  3. 분노는 가까운 사람과 의료진에게 향하기 쉬우나 그들을 겨눈 것이 아니다.
  4. 우울은 상실이 현실로 다가와 가라앉는 단계로 준비된 슬픔이라 부르기도 한다.
  5. 다섯 단계는 순서대로 오지도 모두가 거치지도 않으며 오가고 되풀이된다.
  6. 실천에서 필요한 것은 단계를 맞히는 일이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는 일이다.
  1. 다섯 단계를 반드시 거치는 계단으로 아는 것 — 오가고 건너뛰기도 한다.
  2. 분노를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는 것 — 그 화는 상황을 향한 것인 경우가 많다.
  3. 애도를 기간으로 재는 것 — 「이쯤이면 지났어야지」는 남은 사람을 다시 아프게 한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다섯 단계
단계모습곁에서 할 일
부정그럴 리 없다며 사실을 물리친다서두르지 않고 곁에 있는다
분노왜 하필 나인가, 주위에 화를 낸다화를 개인적으로 받지 않는다
타협조건을 걸어 시간을 얻으려 한다바람을 함께 들어 준다
우울상실이 현실이 되어 가라앉는다위로를 서두르지 않고 슬픔을 허락한다
수용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정리한다원하는 마무리를 함께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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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로 읽을 때의 위험

다섯 단계는 널리 알려진 만큼 잘못 쓰이기도 한다. 가장 흔한 오용은 그것을 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이다. 「아직 부정 단계네요」라거나 「이제 수용하셔야 할 때입니다」라는 말은 그 사람의 속도를 재촉하고, 지금 겪고 있는 것을 틀린 것으로 만든다. 애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몇 달이 지났으니 슬픔이 줄었어야 한다는 기대가 남은 사람을 더 외롭게 한다. 퀴블러-로스가 이 단계들을 제시한 뜻은 순서를 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겪는 것들이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데 있었다. 그때까지 병원에서 그 이야기는 아예 다루어지지 않았고, 환자는 홀로 감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 틀을 쓰는 옳은 방식은 사람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타나는 화와 침묵과 흥정을 견딜 수 있게 이해하는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가족을 만날 때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은 대개 말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몇 가지가 도움이 된다. 첫째, 섣부른 위로를 삼간다. 「괜찮아질 거예요」는 상황을 부정하는 말이 되어 오히려 거리를 만든다. 둘째,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둔다.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데 주위가 화제를 돌려 버려 홀로 남는 경우가 많다. 셋째, 남은 시간에 하고 싶은 일과 마무리하고 싶은 일을 함께 정리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 정리할 일, 남기고 싶은 말이 그것이며, 이 작업이 통제감을 되돌려 준다. 넷째, 가족을 함께 돌본다. 돌보는 사람도 이미 애도를 시작하고 있으며, 사별 이후의 지원까지 이어져야 이 개입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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