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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로 읽을 때의 위험
다섯 단계는 널리 알려진 만큼 잘못 쓰이기도 한다. 가장 흔한 오용은 그것을 평가의 잣대로 삼는 것이다. 「아직 부정 단계네요」라거나 「이제 수용하셔야 할 때입니다」라는 말은 그 사람의 속도를 재촉하고, 지금 겪고 있는 것을 틀린 것으로 만든다. 애도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몇 달이 지났으니 슬픔이 줄었어야 한다는 기대가 남은 사람을 더 외롭게 한다. 퀴블러-로스가 이 단계들을 제시한 뜻은 순서를 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겪는 것들이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데 있었다. 그때까지 병원에서 그 이야기는 아예 다루어지지 않았고, 환자는 홀로 감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이 틀을 쓰는 옳은 방식은 사람을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타나는 화와 침묵과 흥정을 견딜 수 있게 이해하는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가족을 만날 때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은 대개 말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몇 가지가 도움이 된다. 첫째, 섣부른 위로를 삼간다. 「괜찮아질 거예요」는 상황을 부정하는 말이 되어 오히려 거리를 만든다. 둘째,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둔다.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데 주위가 화제를 돌려 버려 홀로 남는 경우가 많다. 셋째, 남은 시간에 하고 싶은 일과 마무리하고 싶은 일을 함께 정리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 정리할 일, 남기고 싶은 말이 그것이며, 이 작업이 통제감을 되돌려 준다. 넷째, 가족을 함께 돌본다. 돌보는 사람도 이미 애도를 시작하고 있으며, 사별 이후의 지원까지 이어져야 이 개입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