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참여하는 자리를 적는다→각 자리의 활동·역할·관계를 본다→어느 자리가 흔들리는지 찾는다→그 자리부터 손본다
미시체계에서 보는 세 가지| 측면 | 무엇을 보나 |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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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 그곳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가 | 함께 놀이한다, 함께 밥을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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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할 | 그 자리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대되는가 | 막내, 반장, 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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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인관계 | 누구와 어떻게 지내는가 | 다정한가, 긴장이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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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환경을 바꾼다는 관점
브론펜브레너 이전의 발달 논의는 환경이 아이에게 무엇을 주는가에 치우쳐 있었다. 그는 방향을 하나 더 그려 넣었다. 아이의 기질과 외모와 반응이 주위 사람들에게서 특정한 반응을 끌어내고, 그 반응이 다시 아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잘 웃는 아기는 어른들의 손길을 더 끌어들이고, 그 손길이 다시 아이를 더 잘 웃게 한다. 반대로 달래기 어려운 아기를 둔 양육자는 지쳐 반응이 줄고, 줄어든 반응이 아이를 더 보채게 만들기도 한다. 이 순환을 알면 실천의 자리가 분명해진다. 「아이가 문제인가 부모가 문제인가」를 가리는 대신 둘 사이에서 돌고 있는 고리를 찾아 끊는 것이 개입이 된다. 양육자에게 아이의 기질을 이해할 정보를 주고, 지친 양육자가 쉴 틈을 만들어 반응할 힘을 되돌려 주는 일이 그 고리를 바꾸는 방법이 된다.
미시체계의 수와 질을 함께 보기
사정에서 미시체계를 살필 때는 두 가지를 함께 본다. 하나는 몇 개나 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각각의 질이 어떤가이다. 미시체계가 가족 하나뿐인 사람은 그 하나가 흔들릴 때 기댈 곳이 없다.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 은퇴한 뒤 직장 관계가 끊긴 노인, 이주해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그런 상태에 놓이기 쉽다. 그래서 개입의 한 축은 참여하는 자리를 하나라도 늘리는 것이 된다. 동시에 수만 늘려서는 안 된다. 긴장이 큰 자리, 무시당하는 자리가 늘면 오히려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자리에서 그 사람이 어떤 역할로 있고 어떻게 대해지는지를 함께 살핀다. 좋은 미시체계는 그 사람이 할 일이 있고 불릴 이름이 있는 자리이며, 그런 자리를 만드는 일이 곧 지원이 된다.